“살인 날것 같다” 신고받고 24분뒤 출동
서로 다른 112신고 동일 신고로 착각
법원 “제때 출동했다면 막을 수 있었을 것…
국가는 유족에 8300만원 배상하라”
서로 다른 112신고 동일 신고로 착각
법원 “제때 출동했다면 막을 수 있었을 것…
국가는 유족에 8300만원 배상하라”
서로 다른 두 건의 112신고를 동일 사건으로 오인한 경찰이 늑장 출동하면서 살인사건을 막지 못한 데 대해, 피해자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다.
서울서부지법 민사21부(재판장 황병헌)는 피해자 이아무개(사건당시 34세)씨의 부모와 자녀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고는 이씨의 부모와 자녀에게 83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17일 밝혔다.
지난해 9월12일 9시40분께 서울 용산구 한남동 주택가에서 박아무개(65)씨가 아들 이아무개(34)씨의 여자친구인 이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아들은 사건이 벌어지기 30분 전에 “어머니와 여자친구가 전화로 싸운 후 여자친구가 집으로 오고 있는데 어머니가 칼을 가지고 여자친구를 죽이겠다며 기다리고 있다”고 112에 신고했다. 그러나 박씨의 집과 68m 떨어진 곳에서 앞서 들어온 가정폭력 신고를 처리하고 있던 경찰은 새로운 신고를 동일 사건으로 오인하고 박씨의 집으로 출동하지 않았다.
아들 이씨가 재차 경찰 출동을 독촉하는 전화를 걸었고, 용산서 112종합상황실 담당자도 ‘두 사건이 별건인 것 같다’ ‘어머니가 칼을 갖고 있다는데 확인이 되나?’며 다시 확인했지만 현장 경찰관은 가정폭력 신고 현장에서 “여기 아들이 좀 정상이 아니다. 아들과 아버지가 조금씩 술에 취했다”고만 보고했다. 최초 신고로부터 24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현장 경찰관은 두 신고가 별건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을 땐 박씨가 이미 흉기를 휘두른 뒤였고, 이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재판부는 “두 건의 신고 내용과 주소가 명확히 다르고 용산경찰서 112종합상황실 담당자가 현장 출동 경찰관에게 동일 사건인지 거듭 확인을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두 건의 신고를 동일사건으로 오인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경찰의 과실로 인해 불합리하게 공무를 처리함으로써 직무상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이어 “박씨가 나이가 많은 여성이어서 살인사건 발생 전에만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더라도 사건을 충분히 방지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했을 때 직무상의 의무위반과 살인사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말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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