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 7월22일 신출귀몰한 갱스터 존 딜린저가 시카고에서 죽었다. 딜린저는 애인 폴리, 친구 애나와 영화관을 나서는 길이었다. 애나가 낯선 사람에게 딜린저를 가리켜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애나가 눈에 잘 띄는 오렌지색 옷을 입은 것도 수상했다. 함정이구나! 딜린저는 달아나지만 에프비아이(FBI·미국 연방수사국)가 쫓아와 네 번이나 총질을 했다.
소식이 알려지자 수천 명이나 되는 사람이 딜린저의 시신이 있는 시체 공시소를 찾았다. 그날 죽은 사람이 딜린저가 아니라는 ‘음모론’도 등장했다. 그의 일대기가 ‘로빈 후드 같은 의적’으로 포장되었다. 딜린저는 왜 인기였을까. 영화배우 뺨치게 잘생겼고 무모할 정도로 대담했다. 탈옥을 두 번 하고 은행을 스물네 번 털었는데, 은행 강도에 쓸 총은 경찰서를 털어서 마련했다나. 대공황 시절에 사람들이 미워하던 은행과 공권력을 골탕 먹였다는 사실이 인기의 비밀일지도 모른다.
김태권 만들고 이은경 찍다
딜린저가 그렇게까지 유명해진 것은 공안기관 덕분이라고도 한다. 딜린저가 훔친 돈이 다 해야 50만달러라는데, 딜린저를 잡겠다며 끌어다 쓴 예산이 200만달러라나. 갓 출범한 에프비아이 조직을 키우기 위해 에드거 후버 국장은 딜린저를 ‘공공의 적’으로 띄워 이용한 셈이다.
김태권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