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자발적 봉사로 볼 수 없어”…대구시엔 실태조사·유사사례 점검 권고
환자들에게 배식, 청소, 간병 등 병원 업무를 떠맡긴 정신병원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제동을 걸었다. 환자들이 병원 일을 대신하고 받은 대가는 한 달 13~30갑 정도의 담배였다.
인권위는 배식, 청소, 간병 등 병원의 고유업무를 환자들에게 시켜 온 대구의 한 정신병원 병원장에게 병원 고유의 업무를 직접 수행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소속직원들에게 인권교육을 실시한 것을 권고했다고 2일 밝혔다. 이와 함께 대구광역시장에게 관할 정신병원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고 유사사례를 점검할 것도 권고했다.
인권위 조사에 따르면, 이아무개(55)씨 등 이 병원 환자들은 1주일에 두차례씩 새벽 4시에 일어나 병원 복도를 닦거나, 매 식사시간마다 20분 정도 국과 밥을 떠주는 배식을 수행하는 등 병원의 업무를 대신했다. 대소변 처리가 어려운 환자 옆에서 잠을 설쳐가며 용변을 돕거나 옷을 빨아주고, 음식을 먹여주는 역할도 맡았다.
환자들은 인권위 조사 과정에서 청소와 밥 배식을 한 대가로 한 달에 담배 30갑 정도, 국 배식을 한 대가로는 담배 13갑 정도를 병원에서 받았다고 밝혔다. 이 담배는 병원 내에서 환자들끼리 사고 팔며 현금화하는 용도로 사용됐다는 것이 인권위의 설명이다.
병원 쪽은 인권위 조사과정에서 “환자들의 자발적인 봉사였다”고 주장했으나, 인권위는 “피해자들이 고정적으로 업무를 하고 병원은 담배라는 유인을 지급했다는 점에 비춰 이들의 노동이 단순히 일시적, 보조적 성격으로 이뤄진 자발적 봉사가 아니었다”며 “정신보건법과 헌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2015년까지 최근 5년동안 정신병원에서 이뤄진 ‘노동강요’와 관련된 진정에 따른 권고는 21건, 수사의뢰는 2건에 이른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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