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8월3일, 미국 선수 제시 오언스는 올림픽 100미터에서 금메달을 땄다. 100미터며 200미터며 400미터 릴레이며 멀리뛰기까지, 제시가 4관왕에 등극하자 미국의 호사가들은 신이 났다. 이번 베를린 올림픽에 히틀러가 공을 들인 까닭은 이른바 ‘아리아인의 우수함’을 선전하기 위해서였는데, 정작 스포츠 영웅이 된 제시는 흑인이었으니 히틀러가 체면을 구겼다며 좋아했다.
백인우월주의 독재자 대 미국의 흑인 선수, 근사한 구도다. 나름 유명한 ‘미국의 미담’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실과 다르단다. 히틀러는 자리에서 일어나 제시한테 손을 흔들어 인사한 일도 있고, 독일 사람들은 사인을 해달라며 제시를 쫓아다녔다. 피부색으로 시비를 걸기는커녕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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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색이 문제가 된 곳은 미국이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4관왕이 된 제시를 백악관에 초청하지 않았다. 흑인한테 친절한 정치인에게는 백인 유권자들이 표를 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뉴욕의 호텔에서 올림픽 승전 파티에 참석할 때도 제시는 화물 승강기를 타야 했단다. 백인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해서였다. “제시 오언스를 홀대한 것은 히틀러가 아니라 미국 대통령”이라는 말은 누가 했을까? 바로 제시 본인이다.
글 김태권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