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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유가협 30년은 한국 민주화 떠받친 피눈물의 역사”

등록 2016-08-10 19:01수정 2016-08-10 20:42

[짬] 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장남수 회장
장남수 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오른쪽부터), 강영철 전 총무, 강선순 현 총무. 뒤에 고 신영복 교수가 쓴 글로 만든 현판(한울삶)이 보인다.
장남수 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오른쪽부터), 강영철 전 총무, 강선순 현 총무. 뒤에 고 신영복 교수가 쓴 글로 만든 현판(한울삶)이 보인다.

오늘 산업화의 샘물을/ 한 바가지씩 마음껏 떠 마시고 있는 이들/ 그 샘을 누가 판 것인지/ 그 사람들의 얼굴이나 아는지 몰라.

(…) 그리고 종로구 창신동/ 가슴에 무덤을 가진 분들이 만든/ 까치집 같은 한울삶의 둥우리 속/ 거기 ‘유가협’이 웅크리고 있다는 거/ 있는 듯 없는 듯/ 알 하나 품고 있다는 거/ 그것을, 그것을 잊지 않았는지 몰라/ 아무리 세월이 한 30년 흘렀기로서니.

(청화 스님, 유가협 후원회장)

봉제공장들이 밀집해 있는 서울 동대문 근처 창신동 좁다란 골목길 한쪽 끝. 거기 27년 전에 자리잡은 민주화운동 유가족들의 사랑방 ‘한울삶’이 있다. 1986년 8월에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란 이름으로 창립해 올해 30돌을 맞은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본부다.

“열사들이 못다 한 꿈을 부모, 형제, 배우자가 대신하겠다고 우리 유가협 회원들이 나선 지 30년, 괴롭고 힘든 나날이었다. 부당한 방법으로 권력을 찬탈한 독재자들은 정통성없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유가협 가족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탄압했다. 용공, 종북, 불순세력, 불량국민으로 낙인이 찍혀 기본권을 제한당하고 요주의 인물로 정보당국의 감시대상으로 살아왔다.”

9일, 한울삶에서 만난 장남수(75) 유가협 회장은 “민주화가 많이 된 줄 알겠지만, 다시 그 전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했다. “예전엔 쿠데타 세력이 노골적으로 탄압했다면, 지금 권력은 매우 교활하게 강자들 편을 들면서 서민들 삶을 파괴하고 있다.”

1995년 12월, 경원대 총학생회 학원자주화추진위원장을 하다 연행당해 구타와 고문 끝에 징역형(형 집행유예)을 받은 뒤 여러차례 정신병원 입원치료까지 받았던 장현구(당시 26살)씨가 서울 송파 사거리에서 분신, 사망했다. 그가 장 회장의 두 아들 중 장남이다.

1987년 1월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 도중 숨져 유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서울대생 박종철의 아버지 박정기(88)씨는, 장 회장이 ‘백서’라고 부른 <너의 사랑 나의 투쟁-유가협 30년의 기록>(송기역·정윤영 기록, 썰물과밀물 펴냄)에 이렇게 썼다. “유가협 회원들은 분신해서 죽고, 투신해서 죽고, 음독으로 죽고, 고문으로 죽고, 의문사로 죽은 자식들을 끌어안고 사는 부모들이다.”

30돌 맞아 지난 역사 증언한
‘너의 사랑 나의 투쟁’ 펴내
내일 조계사에서 출간기념회

회원 대부분 연로 20∼30명 활동
유족 반대에도 이천에 민주공원
"어렵지만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최근 출간된 <너의 사랑 나의 투쟁>에 실린 좌담회에서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1974년 사형당한 하재완의 아내 이영교씨는 말했다. “유가협이 없었다면 외로운 고아나 마찬가지예요. 의지할 곳은 오로지 유가협이에요. …유가협이 없었으면 우리를 거들떠나 봤겠나? 유가족들 만나면 이런 얘기 자주 해요.”

‘한울삶’은 올해 1월 타계한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가 작명했다. 유가협이 지금 터에 자리잡은 것은 1989년. 당시 사무실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던 유가협 이소선·박정기·김승균(일월서각 대표) 등이 유명인사들 서화전을 기획했다. “그때 신 교수가 써 준 글이 한울삶이다. 한 울타리 속에서 함께 사는 삶이란 뜻인데, 그 글은 지금 이곳 현판으로 걸려 있다.” 그렇게 해서 장만한 돈에 빚을 보태 봉제 작업장으로 쓰던 방 세개 27평짜리 작은 한옥 한 채를 구입해 안채는 전세로 내주고 바깥 방 하나로 본부를 삼아 한울삶이란 이름을 달았다. 바깥 벽에 유가협의 역사를 압축한 홍성담의 그림이 부조로 새겨져 있는, 1961년에 지은 이 낡은 한옥은 유가협과 얽힌 그 역사성 덕에 서울시 미래유산 보존건물로 지정돼 있다.

9일에는 총무 강선순(73, 1996년 합리적 등록금 책정을 요구하는 단식농성 후유증으로 숨진 권희정 성신여대생의 어머니)씨와 강영철(84, 구로구청 부정개표 사건으로 복역한 뒤 1990년 노동현장 활동 중 사고사한 강민호 한신대생의 아버지)씨가 한울삶에 나왔다. 총무를 오래 한 강씨는 “지금 우리 나이에 전부 늙어서 못 나오고, 또 죽고 그러니까 여기에 사람이 없어. 젊은 사람들이 와야 하는데, 몇 안되고 안 오니까 좀 거시기 해”라며 사람이 자꾸 없어진다고 했다.

장 회장은 회원 평균나이가 80대 중반쯤 된다며 “내가 제일 젊은 편”이라고 했다. 정회원 85가족, 준회원 20가족 해서 모두 105가족. 장 회장은 “이제 회원 중에 나올 수 있는(활동할 수 있는) 사람은 20~30명 정도”라면서 회장과 부회장, 사무국장(총무) 3명이 상근자라고 했다. 18살 때 고향 전주를 떠나 서울 청운동에서 평생 화초를 키워 팔며 살았던 장 회장처럼, “이런 세상 전혀 모른 채 평범하게 살았던” 이들의 삶은 자식들의 죽음 뒤 완전히 바뀌었다.

회원이 준 것은 세월 탓만은 아닌 듯하다.

지난 6월 이천시 모가면 어농리에 민주화운동 기념공원이 개원됐다. 유가협 등의 피눈물나는 노력 끝에 1999년 제정된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조성된 이 기념공원은 법률에 근거한 10개 사업계획 중 유가협 쪽이 맡아 행자부 산하 민주화보상 심의위원회와 함께 추진해 온 것(9개 사업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주관)이다. 원래 유가협은 수유리 4·19묘역 쪽 솔밭공원 일대 2만 7천 평의 국유지에 세우려 했다. 법에 따라 497억원의 비용까지 확보돼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성사 막바지에 처음에 호의적이던 근처 주민들을 비롯한 4백~5백 명의 사람들이 설명회·공청회장에 몰려와 반대했다. 내세운 이유는 교통난 유발 등이었으나, “빨갱이들에게 그 땅을 내줘서는 안 된다는 수구보수세력 공작 때문”이라고 장 회장은 말했다.

사업진행이 중단되고 이천 등이 대안으로 제시됐지만 유가협은 반대했다. 이천 모가면 부지는 “이천에서 하루 4번 다니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데다 정류장에서 4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이어서 부지 자체의 적정성이나 기념공원의 일차적 고려조건인 대중적 접근성 등에서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보상심의위 쪽은 2007년 말 이천으로 결정하고 사업을 강행했다. 그 과정에서 유가협이 분열됐다. 결론이 나지 않아 찬반투표를 했다. “투표권을 가진 95명 중 21명이 찬성했고 43명이 반대했다. 그런데 심의위는 반대가 투표권자의 과반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업을 강행했다.” 피장자로 인정받은 희생자는 136명이었으나 실제 이천 묘역에 안장된 이는 지금까지 49명이다. 결국 예산은 ‘합법적으로’ 소진됐고, 유가협은 분열됐으며, 법적 소임을 다한 셈이 된 정부만 승자가 됐다.

한국현대사가 이룩해낸 최대·최고의 성취라고 정부 스스로도 공언해온 민주화와 산업화. 그 두 기둥 중 하나인 민주화가 유가협으로 대표되는 희생자들의 피땀과 눈물 위에 세워진 것일진데, 이런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보상심의위는 이들 사망자 136명 외에 9천여 명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800여 명을 상이자(중상자)로 인정했다. 장 회장은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본다.

유가협은 지금 어렵다. “유가협 유지에는 연간 3천만원 정도가 필요한데, 지금 정기적 수입은 1백여명의 후원자들이 내는 월 1백여 만원이 전부다. 나머지는 부정기적 기증·후원금으로 어렵게 떼우고 있다.”

오는 12일 오후 5시부터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유가협 30주년 기념식과 <너의 사랑 나의 투쟁>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글·사진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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