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관동대학살 이후 93년만에
한국에서 처음 추도식 열려
학살 피해자 넋 기리는 넋전춤도
한국에서 처음 추도식 열려
학살 피해자 넋 기리는 넋전춤도
“관동대지진 한인학살 희생자의 유족은 그동안 조상의 가묘 앞에서 제를 지내면서 93년간 매몰된 민족의 비극사를 오롯이 개인이 감당해왔습니다. 한일 양국정부에 진상조사, 유해 발굴조사를 실시해 유골 한 조각이라도 고향에 안치할 수 있도록 인도적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합니다.”
1923년 관동대지진 한인학살 사건으로 만삭이었던 할머니 등 일가족 5명을 잃은 조영균(61)씨가 일본과 한국 정부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읽어 내려갔다.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 때 일본에 학살당했던 한인들의 넋을 위로하는 추도식이 열렸다. 희생자를 기리는 분향소가 광화문광장 북측에 마련됐고, 광화문 광장 주변에 걸린 6000여장의 넋전(마음속으로 그 사람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오린 사람 모양의 종이)이 바람에 휘날렸다. ‘1923년 학살당한 재일한인 추도모임’ 주최로 마련된 이 자리엔 희생자 유족과 시민, 종교인 등 200여명이 참석해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이들의 넋을 기렸다. 한국에서 관동대지진 한인학살 사건에 대한 공식적인 추모행사가 마련된 것은 참사 이후 처음이다.
추도식은 유족과 시민단체가 성명서를 발표하는 1부와 상여를 모시고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는 넋전춤을 추는 2부로 구성됐다. 한국과 일본 시민단체는 성명서를 통해 사건을 은폐하는 일본정부와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한국정부를 규탄했다. 1923년 학살당한 재일한인 추도모임의 김광열 공동대표는 “(1923년 한인 학살은) 이민족을 배척해 일어난 제노사이드로 명백한 범죄행위에 해당하지만, 일본은 사죄하지 않았고 한국 정부도 진상규명을 시도하거나 일본정부에 항의하지 않았다”며 양국 정부를 비판했다. 일본 시민단체 ‘1923년 조선인 학살사건 국가책임을 묻는 모임’의 다나카 마사타카씨도 “일본정부는 책임을 인정하고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진상조사를 벌이는 등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고 말했다. 추도사와 성명서 낭독을 마친 후 유족과 시민들은 길게 줄을 서 분향소에 국화꽃을 올리고 향을 피웠다.
2부에는 학살 희생자의 상여를 모시는 의식이 진행됐다. 공주 봉현리 상여소리가 시연됐다. ‘관동 대학살 희생동포 위령’이라 적힌 만장을 앞세운 상여가 광화문 북측광장을 돌아 퍼포먼스를 위해 만든 봉선화 무덤에 도착했다. 무덤엔 봉선화꽃을 심은 화분이 놓여졌다. 외지에서의 겪는 설움을 담은 노래 ‘봉선화’에 착안해 추도모임의 관계자들이 직접 기른 것이다. 뒤이어 심우성 한국민속극연구소 소장과 넋전춤의 대가 양혜경씨가 넋전춤을 췄다. 넋전춤은 넋전을 작은 깃대에 달고 아리랑 등의 음악에 맞춰 추는 춤으로, 사람들의 애환을 기리는 우리춤이다.
관동대지진 한인학살 사건은 1923년 9월1일 일본 관동에 지진이 일어나자 도쿄 일대에서 ‘조선인이 불을 지르고, 우물에 독을 던지고, 폭동을 일으켰다’는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일본인 자경단과 군경의 손에 조선사람 6천여명(비공식 집계 6661명)이 영문도 모른 채 학살당한 사건이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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