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원에게 밝은 표정으로 인사
아들 “검찰 수사 시작된데다
어머니 수술 겹쳐 힘들어해”
양평은 퇴직후 살기로 했던 곳
지인에게 집 설계도 보여주기도
아들 “검찰 수사 시작된데다
어머니 수술 겹쳐 힘들어해”
양평은 퇴직후 살기로 했던 곳
지인에게 집 설계도 보여주기도
검찰 조사를 앞둔 26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인원(69) 롯데그룹 부회장은 전날 밤 만난 주변 사람에게 밝은 표정으로 인사했다.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의 한 아파트에 사는 이 부회장은 25일 저녁 8시10분께 아파트 건물 입구로 들어오면서 우편물을 확인하고, 미소 띈 표정으로 경비원을 만났다. 경비원은 “(이 부회장이) 조금 있으면 부인도 퇴원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인사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의 부인은 보름 전께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파트 쪽이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통해 확인한 결과, 이 부회장은 반바지 차림으로 밤 10시께 지하 주차장에서 자신의 제네시스 EQ900 차량을 몰고 나간 것으로 전해졌다. “운동을 하러 나간다”며 집을 나선 뒤 연락이 끊겼던 이 부회장은 주검으로 발견된 곳은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북한강변의 산책로였다. 26일 오전 7시10분께 산책로 인근에서 운동을 하던 한 주민이 높이 3m가량 나무 밑에 60대 남성이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나무에는 넥타이와 스카프가 끊긴 채 매여있었다. 발견 당시 이 부회장은 베이지색 반바지 차림이었고, 주변에는 ‘롯데’라고 새겨진 고동색 우산이 펼쳐져 있었다고 경찰은 전했다.
그는 산책로 어귀에서 40m 가량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는데, 강변을 따라 식당이나 모텔들이 주로 있지만 산책로는 평소에 사람이 많지 않은 곳이라고 주민들은 전했다. 경찰은 주검에서 발견된 신분증 등을 통해 이 부회장임을 확인하고, 이날 오전 유족들을 주검이 안치된 양수장례식장으로 불러 신원을 확인했다. 소식을 듣고 황급히 달려온 이 부회장의 아들은 “최근 검찰 수사가 시작된 이후 가정사까지 겹치면서 이 회장이 많이 힘들어 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그의 차 안에는 블랙박스가 장착되지 않았고 휴대전화도 집에 두고 나갔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부회장이 숨진 채 발견된 양평군은 그가 퇴직 후 삶의 터전으로 계획했던 곳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과 친구 사이로 지냈다는 강건국 가일미술관 관장은 “5년 전쯤 이 부회장이 미술관에 들른 이후 알고 지냈고, 1주일에 한 두번 미술관을 찾아와 가끔 식사도 같이 했다. 그는 양평에 별다른 연고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으면 이곳을 찾아 머리를 식혔던 것으로 안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강 관장은 이어 “이 부회장은 올 때마다 직접 차를 몰고 부인과 함께 왔는데, 거동이 불편한 부인을 정성껏 보살폈던 것 같다. 산과 강이 있는 양평이 좋아 은퇴 후 30~40평짜리 단층 짜리 집을 짓고 소박하게 살고 싶다며 설계도면을 나한테 보여주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양평/김기성 기자, 박수진 기자 jjin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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