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서울 마포구 아현동 재개발 현장.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좁고 가늘고 구불구불한 길을 오르며 사라져가는 것들을 안쓰러워했던 사진가 김기찬(2005년 작고). 그의 발길이 머물렀던 서울역 뒤편 만리동 고갯마루에 2016년 9월 노란 타워크레인 한 대가 섰습니다. 달을 위협하는 크레인 아래서 몇 남지 않은 단독주택과 골목길마저 헐려나갈 모양입니다. 김기찬이 눈길을 뒀던 ‘골목 안 풍경’의 ‘그 후’를 좇으며 7년을 걸었습니다. 골목을 따라 걸었는데 골목은 보이지 않는 ‘깔끔하고 쓸쓸한 풍경’만 남았습니다.
“사진 찍는 양반이슈?”
2012년 8월 환일고등학교(서울 마포구 환일길) 뒤편 언덕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마을 축대를 수리하던 중년 남자가 물었다.
“아, 네….”
나의 사진기를 본 그는 과거 그 골목을 찾아오던 한 사람을 떠올리고 있었다.
“내가 젊었을 때 말이요. 우리 동네에 사진 찍으러 자주 오던 아저씨가 있었는데, 요즘은 통 안 보입디다.”
“몇 해 전에 돌아가셨어요.”
“에구…. 예전에 나를 보면 사진도 찍어주고 하셨는데…. 그런데 아저씨는 사진 안 찍어요? 자, 그 양반처럼 나 좀 찍어 봐요.”
땀에 젖은 러닝셔츠 차림의 남자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카메라를 기다렸다.
2012년 8월. 마포구 아현동 환일길 마을 축대 공사. 골목 풍경.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그가 떠올린 아저씨. 30여년에 걸친 골목 사진 작업으로 ‘골목 안 풍경’이라는 단어를 독차지해버린 사람. 방송사 영상제작 전문가로 근무하던 1968년 카메라를 들고 서울역 근처를 서성거리다 노점 일을 마친 뒤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을 따라 역 뒤편 골목길로 들어선 사람. 중림동(중구), 만리동(중구), 아현동(마포구), 공덕동(마포구) 일대를 걸으며,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 삶의 모습을 촬영해 평생의 사진작업으로 남긴 사람. 김기찬(1938~2005)이라는 사진가가 있었다.
대한민국 사진을 대표하는 중요한 아카이브로 평가되고 있는 그의 ‘골목 안 풍경’ 연작은 1970~90년대 서울 달동네 사람들의 고달프지만 정겨운 삶의 기록이며 이웃의 속살을 포착한 따뜻한 사진들이다.
추석날에도 찾아와 인상 좋은 얼굴로 카메라를 꺼내는 사진가 앞에서 골목 안 사람들은 거리낌 없이 대문을 열어주었고 마당은 물론 마루까지 내주며 삶의 안쪽을 보여주었다. 2005년 8월 김기찬이 세상을 떠나고 뒤늦게 사람들이 골목의 진가를 알아챘을 때는 서울 시내 골목의 상당 부분이 사라지고 없었고, 그나마 남아 있는 골목마저도 재개발 열풍에 하나둘 자리를 빼앗기고 있었다.
2013년 6월. 마포구 공덕동 골목길 빨래와 아이들 풍경.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그의 시선이 머물렀던 서울역 뒤편 만리동 고갯마루에 2016년 9월 노란 타워크레인 한 대가 다시 섰다. 크레인의 가늘고 긴 팔은 과거 달동네 어린아이들이 한가위 보름달을 따기 위해 치켜든 대나무 장대 같았다. 달을 위협하는 크레인 아래서 그나마 몇 남지 않은 단독주택과 골목길마저 헐려나갈 모양이다.
아현동, 공덕동, 중림동, 서계동(용산구)은 만리동 고갯마루에서 갈라지고 또 만난다. 행정구역으로는 나뉘어 있지만 길 건너 이웃하며 한동네로 불려도 크게 이상하지 않다. 이곳 골목의 풍경이 최근 몇 년 새 옛 모습을 잃고 아파트 단지로 변해가고 있다.
2013년 10월. 마포구 아현동 재개발 지역.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2010년 즈음부터 만리동 고개 좌우에 나붙기 시작한 재개발 확정 현수막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마을과 골목 풍경을 얼마나 더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나는 출퇴근 시간을 내서라도 고개 주변의 골목길을 걸어 보자고 마음먹었다. 평소보다 한두 시간 정도 일찍 집에서 출발해 서울지하철 2호선 충정로역이나 아현역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다. 충정로역에서 하차하면 봉래산 손기정체육공원길로 들어선 뒤 만리배수지공원을 넘어 환일길을 끼고 걸었다. 아현역에 내려서는 굴레방로와 아현시장을 지나 성니콜라스 한국정교회성당길로 방향을 잡았다. 나의 ‘아(아현동), 공중만리(공덕동·중림동·만리동)’ 작업은 그렇게 시작됐다.
2012년 8월. 마포구 아현동 골목 풍경. ‘개똥은 산에 뉘세요’.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걸을수록 마음이 바빠졌다. 엊그제까지 멀쩡하던 집들이 한순간 헐려 없어지거나 시멘트 덩어리로 주저앉았다. 만리 주택 재개발지역(2017년 8월 입주 목표로 재개발), 아현1-3주택 재개발지역(2017년 2월 입주 목표로 재개발), 공덕자이아파트 재개발지역, 공덕1-1주거환경개선지구, 공덕1-2주거환경개선지구, 서계2주거환경개선지구, 효창6주택재개발지구. 여기에 만리동고개를 따라 양쪽 곳곳에서 진행중인 오피스텔과 게스트하우스 공사들…. 집 떠난 나그네의 그림자가 길어질수록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바빠진다더니 동지섣달 서산으로 지는 햇살의 끄트머리를 쫓는 것처럼 나의 걸음도 조급해졌다.
사통팔달 어디로든 통하던 골목, 그래서 어느 골목으로 들어서든 막힘이 없다던 골목,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막다른 길에 당도하기 시작했다. 재개발 공사가 시작되어 안전 가림막을 설치한 곳과 아파트 공사가 끝나 거대한 옹벽이 가로막은 곳에서 골목은 끊어지고 있었다.
손기정체육공원으로 향하는 봉래초등학교 뒷산의 길고 가느다란 언덕을 오르다 보면 길 사이 좌우 골목으로 계단이 더러 있었다. 대체로 비탈길이었다. 그림자가 긴 아침 걸음에 만나는 주민들은 대체로 노인들이었다. 아이를 업거나 손잡은 노인들은 그 길을 지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닿았다.
2013년 2월. 마포구 아현동 재개발 지역.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마을버스가 회차하는 곳에 신일약국이 있다. 그 고개 너머로 남산과 서울역, 봉래동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곳에서 다시 만리배수지공원 마실길을 향해 걷다 보면 턱에 찬 숨이 다리에 얹혀 장딴지를 묵직하게 한다. 공원에 올라서면 봉래동·중림동·아현동·공덕동·만리동이 한눈에 들어온다. 어쩌면 김기찬도 그 동산 위에서 한 번쯤 쉬어가지 않았을까 싶다. 2013년 3월부터 재개발 현장의 타워크레인들이 하늘을 차지한 채 시야를 막고 돌기 시작했다. 아현동이 내려다보이는 환일길 쪽에서도 재개발이 시작되어 비탈 위의 집들만 남고 헐려나갔다.
낮에 만나는 노인들은 보통 혼자 걸었다. 새로 들어선 아파트 노인정에서는 함께 모여 화투를 치고 웃음도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골목 끝 양지 바른 자리에 앉아 먼 하늘을 올려다보는 노인의 눈길은 사진기의 초점이 따라가기에도 버거웠다.
2013년 10월. 마포구 공덕동 새우젓 장수 아주머니.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2000년대 이전까지 골목마다 무성했던 웃음소리와 이야기는 어디로 쫓겨났을까. 단층집들이 2~3층 양옥 연립으로 바뀐 것이 1980년대 중후반의 일이었다. 어느덧 그 연립주택들마저 재개발 열풍에 헐리면서 건물을 싸고 있던 골목들까지 헐어냈다. 이야기가 향기롭던 골목은 아파트로 통하는 메마른 아스팔트로 바뀌고 있다. 골목 대신 고무 바닥재를 깐 놀이터가 들어서고 반듯한 정자가 세워졌지만 사람과 이야기는 간 곳이 없다.
2013년 10월 마포대로와 만리재로 사이에서 용케 살아남은 골목길을 걷다 우연히 새우젓을 파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아주머니는 커다란 양은 함지에 새우젓을 가득 담아 머리에 이고 골목을 누비며 팔러 다녔다. “현대식 마트나 시장 어물전이 멀지 않지만 그래도 이 골목에 새우젓을 이고 오면 반기는 분들이 있어 그만두지 못한다”며 아주머니는 웃었다. 마포나루의 옛 추억을 되살려내는 웃음이었다.
햇빛을 조금이라도 더 받도록 빨랫줄을 높이 치켜세운 바지랑대를 발견(2014년 10월)하고 반가웠다. 콘크리트 바닥에 펼쳐진 빨래도 있었다. 볕에 달궈진 콘크리트 바닥을 깨끗하게 닦아내고 그 위에 식구들의 속옷과 양말 등을 펼쳐 너는 지혜는 어디서 왔을까. 서로 모르는 것 없는 이웃에겐 내 식구들의 속내를 보여도 된다는 생각, 이 골목의 누구도 손을 대거나 가져가지 않을 거란 믿음이 그 빨래들을 대문 앞 길바닥에 널어놓게 하지 않았을까.
“옛날에는 이 동네 사람들이 죄다 이 물 먹었어요. 아직도 물은 좋아.”
2013년 6월. 마포구 공덕동 골목 어귀에 남아 있는 옛 우물.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2013년 8월. 마포구 공덕동 고추 말리기.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우물의 형태는 잃었지만 여전히 물을 내주는 집 앞 샘에서 한 아주머니가 물을 길어 화분을 적셨다.(2013년 6월) 대문 앞 좁은 공간에 상추며 꽃 화분이 그득했다. 마당이 콘크리트로 덮이자 스티로폼 박스와 고무 함지 등에 흙을 담아 상추 서너 포기와 고추 몇 대, 대파 몇 뿌리를 심고 거두는 모습에서 사라지는 골목은 애틋하게 남아 있었다.
A4용지 2장 크기도 안 되는 스티로폼 박스는 그 집 할머니의 텃밭이었다. 상추와 쑥갓을 길러 뜯어 먹고 나면 풋고추를 심었다. 고추를 따 먹은 뒤엔 배추 차례였다. 어른 머리통보다 크게 자란 배추는 포기마다 묶거나 비닐 덮개를 씌워주며 속이 꽉 차도록 키웠다. 그렇게 한 해 농사를 끝내면 스티로폼과 화분에 경고문을 붙여 밭(?)을 지켰다.
“이 흙 퍼 가지 마세요.”
2012년 6월. 마포구 공덕동 골목길 연탄재.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겨울이 다가오면 공덕동 길가에 검은 연탄이 나타났다. 수백 장 쌓인 연탄은 한나절이면 골목의 각 가정으로 배달되고, 타고 남은 연탄재들이 대문 앞에 줄을 섰다. 연탄재는 쓰레기로 분류되기에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담아 내놓은 모습도 흔히 볼 수 있었다.
“아직은 연탄 때는 집들이 있어요. 이나마 우리 동네 아니면 볼 수 없을지도 몰라요.”
“이런 걸 뭐하러 찍냐”면서도 두런두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연탄배달 부부의 얼굴은 매년 늦가을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만날 수 있었다. 연탄재 묻은 그들의 얼굴도 이 동네에서 더는 보지 못하는 날이 오고 말 것이다.
2013년 8월. 마포구 공덕동 골목 풍경.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2013년 2월 눈이 내렸다. 마지막 집이 헐렸다. ‘공덕동 7통’이 사라지고, 도로명 ‘마포대로28길’을 얻었다. 이제는 사업지명 ‘아현 1-3주택 재개발지역’(2017년 2월 입주 목표 재개발)으로 불린다. 통반장이 골목을 누비며 가정사를 챙기던 마을이 사라지고 사람 키 두세 배의 공사 가림막이 설치됐다. 애지중지 지켜내던 스티로폼과 화분의 흙은 포클레인 한 삽도 안 되는 쓰레기가 되어 버려졌다.
2015년 4월. 서대문구 북아현동 골목길 풍경.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아, 공중만리!’는 노랗고 뾰족한 타워크레인에 하늘마저 뚫려버린 만리동 고갯마루에서 끝났다. 골목을 따라 걸었는데 골목은 보이지 않는 ‘깔끔하고 쓸쓸한 풍경’만 남았다. ‘공중만리’가 이 지역의 풍경만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서울만의 풍경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우리가 살아온 공간들은 ‘현재’에서 밀려나 ‘추억’이 되고 있다. ○○동 ○번지 ○통 ○반을 잊지 못한 노인들의 흐릿한 기억에서나 사라진 골목들은 회상될 것이다. 그 골목의 이웃들도 굳게 닫힌 재개발 아파트의 현관문 안으로 숨어버렸다.
사진·글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이 작업은 2016년 9월10일 사진집 <골목 안 풍경 그후: 아, 공중만리>(눈빛 펴냄)로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