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지목받은 예술인들 “그다지 놀랍지 않다”
청와대가 지난해 검열해야 할 문화예술계 인사 9473명의 명단을 작성해 문화체육관광부로 내려보냈다는, 이른바 ‘블랙리스트’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명단에 이름이 오른 문화예술인들이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심경을 밝혔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야만적 불법 행위와 권력 남용을 자행하는 현 정부와 대통령은 탄핵 대상”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박원순 시장은 12일 자정께, 자신의 페이스북에 “2014년 지방선거 때 저를 지지 선언한 1600여명 명단도 (블랙리스트) 주요 대상으로 포함돼 있다”며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이런 정도의 사건이 서구에서 일어났다면 어떤 대통령도, 어떤 내각도 사임할 일”이라고 비판했다. 박 시장은 이어 “정상적 민주주의하에서 어떤 공직후보자를 지지했다고 블랙리스트에 오르고, 온갖 불이익을 받았다는 사례는 들어보지 못했다. 권력의 막장 드라마이고 사유화의 극치”라고 지적했다.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명단에 오른 탁현민 성공회대 교수(공연연출가)도 같은 날, 페이스북에 “특정 후보를 지지했다는 이유만으로 정부가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불이익과 탄압의 근거로 삼았다는 의심이 이제 사실로 드러나는 모양”이라고 운을 뗐다. 그는 “연출 의뢰가 들어오지 않고, 공연 대관이 거부되고 번복되는 일은 익숙한 일이 되어 버렸고 프로덕션의 이름을 바꾼다거나 연출자의 이름에 조연출의 이름을 써넣는다던가 대관신청서에 다른 내용을 끼워 넣는 등의 방법들도 이제는 익숙해졌다”며 “정치적 색깔이 짙은 연출자에게 일이나 공연장을 줄 수 없다는 이 준엄한 ‘정치적’ 결정은 지난 4년간 아니 이명박 박근혜 정권 내내 유지됐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사실 화가 나지도 않았습니다. 그 명단을 만든 사람들의 수고와 그것을 실제로 적용하려던 그 노력들도 참 안됐구나 싶어졌다”고 설명했다.
문학평론가이자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도 트위터(@septuor1)에 “블랙리스트를 살펴보았다. 문학 분야에만 국한해서 볼 때, 명단에 없는 문인들 가운데서도 이 정권의 비리와 못남에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는 작가들이 많다”며 “문화예술계의 블랙리스트보다 최근 몇 년 동안 문화예술위원회에서 누가 무슨 심사를 했으며, 누가 무슨 기획을 했는지, 그 명단이 더 중요할 것 같다”고 밝혔다. 황 교수는 이어 “블랙리스트는 리스트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이 리스트가 지극한 성의 없이 만들어졌다는 것도 문제일 것 같다. 만드는 사람조차 왜 이런 것을 만들어야 하는지 제 팔자를 한탄하며 만들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샤머니즘의 정치 아래서는 만인이 불행하다”고 지적했다.
안도현 시인도 트위터(@ahndh61)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중에 내 이름이 없으면 어떡하나,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명단을 살펴보았다. 참 다행”이라며 “2015년 아르코 창작기금 지원사업은 100명의 문학인에게 지원하게 되어 있었는데 70여명밖에 지원하지 않았다. 그때 명단을 일일이 대조해본 결과 탈락한 문인들은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했거나 문재인을 지지한 문인들이었다”고 밝혔다. 장석주 시인은 트위터(@CSukjoo)에 “문화계 블랙리스트 파문이 크다. 문화예술인들 모임에서도 단연 화제”라며 “권력 눈 밖에 난 이들을 각종 지원사업 등에서 배제하고 불이익을 주었다는 건데, 이걸 지시하고 만든 사람들 지금 제정신인가?”라고 비판했다.
소설가 공지영 작가도 “어이가 없다”며 블랙리스트 관련 <한겨레> 기사를 공유했고, ‘글 쓰는 요리사’로 이름을 알린 박찬일 셰프는 “영광입니다. 각하, 일개 요리사를 이런 데 올려주시고”라며 한탄했다.
청와대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문화체육관광부로 내려보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과 관련해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13일 국정감사에서 “그런 문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고받았다”고 부인했다.
박수진 기자 jjinpd@hani.co.kr
박원순 서울시장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안도현 시인 트위터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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