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박형진(29)씨는 여자친구와 ‘망리단길’을 찾았다. 페이스북 게시글 ‘핫하다는 망리단길, 맛집 베스트(BEST) 10'에 나온 추천 맛집을 방문하기 위해서다. 박씨가 찾아간 식당은 대기 인원이 길게 줄 선 상태였다. 박씨는 다른 식당을 찾아야 했다. 그는 “‘망리단길’이라고 해서 모르는 지역 이름인 줄 알았다. 이렇게 많이 알려졌을 줄 몰랐다”고 말했다. 망리단길은 서울 망원동 포은로를 중심으로 펼쳐진 망원시장 일대의 골목길을 일컫는다. 공식 지명은 아니다. 홍대 앞의 치솟는 임대료를 피해온 분위기 있는 카페와 식당이 늘어나자, 용산구 이태원동 ‘경리단길’을 패러디해 만들어진 일종의 별칭이다.
관악구 ‘샤로수길', 마포구 ‘연트럴파크'도 비슷한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샤로수길은 서울 관악구 관악로 14길 인근 600m에 이르는 골목길로, 서울대 정문에 설치된 ‘샤’ 모양의 조형물과 강남구 ‘가로수길’을 합성해 만들어진 별칭이다. 연트럴파크는 마포구 연남동 경의선숲길과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 명칭을 조합했다. 널리 알려진 지역 이름을 차용하는, 이른바 ‘뜨는 동네’의 명명 방식이다. 이런 별칭은 ‘연트럴파크 피크닉 즐기는 법’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언론 보도를 타고 확산되는 경향을 보인다.
망원동 주민들은 ‘망리단길’이라는 명칭이 지역 임대료 상승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망원동에서 10년 넘게 ㅈ부동산중개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ㄱ씨는 “망리단길이라는 이름이 알려진 올해 초부터 (망원동에 위치한 점포들) 장사가 잘 된다. 요즘 나오는 물건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ㄱ씨는 “매매 시세가 평당 3000만~3500만원 정도였는데, ‘망리단길’ 이름이 대중화되면서 요즘엔 평당 4000만원을 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한식전문점 ‘월향’ 대표 이여영씨도 망원동에서 식당을 열려다 포기했다. 이씨는 “어떤 부동산은 30평 정도 장사하려면 기본 월세가 1000만원이라고 하더라. 올해 초보다 두 배 이상 뛰었다고 했다”며 “어떤 곳은 월세가 청담동과 비슷한 정도였다. 구매력은 청담동이 월등해서 청담동에 가게를 내는 걸로 계획을 바꿨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망리단길’ 이름을 거부하는 주민들의 모임도 생겼다. 지역 고유의 특색을 빼앗고 상업화를 부추긴다는 이유에서다. 40년 이상 망원동에 거주해온 토박이 류승완(40)씨는 지난 9월 페이스북에 ‘<망원동길> 잃어버린 이름찾기 프로젝트’ 그룹을 개설했다. 30여명이 속해있는 이 그룹 멤버들은 ‘망리단길’이 언급된 기사를 찾아 언론사에 ‘망원동길’로 바꿔달라는 요청을 넣고 있다. 류씨는 “경리단길과 색깔도 다른데, 왜 경리단길 이름을 빌려 불러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감도 좋지 않다. 지역에 오래 산 사람으로서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그룹에 속한 조아무개(37)씨는 “경리단길도 사람들에 알려지면서 지나치게 상업화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망원동도 오래된 가게들이 사라지는 경리단길이나 가로수길 전철을 밟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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