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입구에 설치된 감시카메라가 정문을 응시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검찰이 최순실씨에 이어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게도 뇌물이 아닌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해 4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앞서 최씨에게 사기미수 혐의를 추가했던 검찰은 이날 안 전 수석에게는 강요미수 혐의를 추가했다. 사기미수와 강요미수는 단순 사기나 공갈범에게 주로 적용하는 혐의로, 검찰의 영장 내용만으로 보면 최씨와 안 전 수석은 대통령의 두 차례 사과를 불러온 ‘국기문란 사범’이 아닌, 단순 ‘잡범’에 그친다.
검찰은 이날 안 전 수석에 대해 청와대 경제수석 재직 당시 최순실씨와 공모해 53개 기업에 774억원을 출연하도록 압박한 사실을 확인하고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했다. 공무원인 안 전 수석과 민간인인 최씨가 공동으로 범죄를 저질렀다고 봤다. 검찰은 “안 수석에게 적용한 직권남용 혐의는 앞서 최씨에게 적용한 혐의와 유사하거나 동일하다”고 밝혔다.
직권남용과 함께 검찰이 안 전 수석에 대해 추가한 혐의는 강요미수다. ‘문화계 황태자’였던 차은택씨의 측근으로 알려진 송성각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이 포스코 계열 광고사인 포레카를 인수한 중소광고사에 지분 80%를 내놓으라고 협박했는데, 이 과정에 안 수석이 개입한 흔적이 있다는 것이다. 송 전 원장은 실제 지분 획득에는 실패했다. 강요죄(형법 324조)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할 때 성립하는 범죄다. 한 현직 검찰 간부는 “청와대 경제수석이 기업을 상대로 ‘잡범’ 수준의 범죄를 저질렀다는 게 수사팀의 판단인 셈이다. 나중에 특검이 다른 판단을 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안 전 수석에게 적용된 두 가지 혐의는 법원에서 무죄가 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한 현직 판사는 “강요는 하는 순간 범죄가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강요미수는 개념적으로 잘 적용하지 않는다. 미수 시점과 기수 시점도 애매하다. (강요미수 혐의 적용은) 검찰이 스스로 무죄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얘기하는 거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직권남용 역시 마찬가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직권남용의 경우 대법원이 해당 공무원에게 최소한의 ‘일반적 직무권한’이 있었는지, 직권행사가 허용되는 법령상 요건을 충족했는지를 엄격하게 본다”며 “검찰이 직권남용으로 범위를 좁혀 기소할 경우 무죄 가능성을 안고 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2007년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기업들에 부탁해 신정아씨가 근무하는 미술관을 후원하도록 했는데, 법원은 ’청와대 정책실장의 직권이 아니다’라는 취지로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결했다.
검찰이 최씨에 이어 안 전 수석에 대해서도 제3자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하지 않는 것에 대해 박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이 최씨나 안 수석에게 뇌물 혐의를 적용하면 지시 관계에 있는 박 대통령까지 피의자로 수사하지 않을 수 없다. 반면 직권남용은 안 수석이나 최씨가 오버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박 대통령은 빠져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안 전 수석의 영장 발부 여부는 5일 영장실질심사를 거쳐 결정된다.
최현준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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