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일본 아베 신조 총리, 이 둘이 손을 맞잡도록 조종하는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 멀리서 이를 지켜보고 있는 한 소녀의 쓸쓸한 뒷모습. 오는 20일까지 서울 통인동 느티나무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2016이매진전-평화를 염원하는 예술가들의 풍자연대'에 걸린 그림 ‘잊혀져버린 사람들'이다. 지난해 ‘12·28 한일 위안부 합의’를 풍자한 일본 만화가 미시마 아유미(36)의 작품이다.
아유미 미시마 작품 ‘잊혀져버린 사람들’.
아유미 미시마의 작품 ‘벽을 넘어서’.
아유미 미시마의 작품 ‘잊혀져버린 사람들’(왼쪽)과 ‘자위군, 출동!’.
한국에서 시사만화가 고경일 상명대 교수, '평화의 소녀상' 작가 김운성·김서경씨 부부 등 13명이, 일본에서는 그와 함께 가와사키 아코, 하시모토 마사루, 이치 하나하나 등 5명이 만화와 사진 등 모두 40여점을 선보인다.
그는 재일조선인 차별 문제, 핵발전소 문제, 오키나와 미군기지 문제 등 ‘소외된 사람들’에 주목해왔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둔 것은 2000년 12월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 전범 국제민간인권법정’을 참관하면서부터다. 피해 할머니들이 위안부 강제동원과 성폭행이 국제법의 전쟁범죄·반인도 범죄임을 증명하며 승소를 이끄는 모습을 보고 그는 “척박한 벌판에서 할머니들 스스로 정의를 일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2013년 만화가로 등단하자마자 한국을 방문해 수요집회에 참석하는 등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목소리를 내왔다.
그러나 미시마는 ‘위안부’ 문제를 쉽사리 그림으로 옮길 수 없었다. “풍자만화는 객관적일 때 힘을 발휘하는데, 피해 할머니들에 여성으로서 완전히 공감했다. 피해자로서 느껴지는 아픔이 커서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그러다 지난해 12월 한일 정부가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선언했고 이 합의에 미국이 관여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그는 “빠가빠가시”(바보 멍청이 같은 상황)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화가 나서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분노’로 그린 작품 5개를 들고, 자비를 들여 지난 3일 한국을 다시 찾았다.
미시마는 지난 5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차 범국민행동 촛불집회를 지켜봤다. 그는 “역사에서 ‘위안부’ 문제를 지우려는 두 나라 정부와 달리 한국인들은 변함이 없다. 소녀상을 세우면서 할머니들을 지켜주고 있다. ‘에네르기’가 있다. 그런 에너지로 제 작품도 감상해주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 고한솔 기자 so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