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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증거 명백하면 재심 문턱 낮추고 재판도 신속히”

등록 2016-11-21 19:02수정 2016-11-21 22:00

[짬] 황상만 전 군산경찰서 형사반장
황상만 전 군산경찰서 형사반장.
황상만 전 군산경찰서 형사반장.

“진실이 아닌 거짓은 결국 드러납니다.”

16년 전에 발생한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해사건은 지난 17일 재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왔다. 10년간 꼬박 옥살이를 한 최아무개(32)씨가 살인자 굴레를 벗은 것이다. 2000년 8월10일 새벽 2시께 익산시 영등동 약촌오거리 부근에서 택시 운전기사(당시 42살)가 흉기에 찔려 살해됐다. 경찰은 인근에서 배달일을 하던 당시 16살 소년이던 최씨를 범인으로 붙잡았다. 묻힐 뻔한 이 사건의 재심이 이뤄진 데는 황상만(62) 전 전북 군산경찰서 형사반장의 노력이 컸다. 황 전 반장은 2003년 6월에 또다른 택시강도 사건을 수사하다 익산 사건의 진범을 알게 됐다. 당시 범인으로 몰린 최씨는 이미 10년형이 확정돼 복역하고 있었다. 2014년 퇴직한 그는 현직에 있을 때 한번 맡은 사건은 끝장을 볼 만큼 집요했다.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 진범
3년뒤 다른 사건 수사로 알게 돼
자백 동영상 확보에도 검찰 뭉개고
수사 11개월 뒤 파출소 전보돼

최근 재심 판결로 진범 구속
“직무유기한 검사 책임져야”

“주변에서 미친놈이라고 했어요. 확정판결된 사건을 뒤집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것이지요. 경찰 간부들도 뒤에서 돕기는 했지만, 책임지기 싫고 엮이고 싶지 않아 직접 나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가능성이 없다고 해도 진실에 눈감을 수는 없었습니다. 수사의 목적은 진범을 잡는 것 아닙니까.”

그는 익산 사건을 수사하면 할수록 진범이 따로 있음을 확신했다. 진범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구체적인 진술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는 “진범이 ‘흉기로 택시기사를 찔렀을 때 뼈에 닿아 걸리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진범을 숨겨주고 재워준 친구한테서 ‘흉기 끝이 약 3㎜ 휘어져 있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이는 꾸며낼 수 있는 얘기가 아니었다. 이 진술은 갈비뼈가 손상됐던 숨진 택시 기사의 부검 결과와도 일치했다.

진범은 4회, 그를 숨겨준 친구는 5회 황 전 반장에게 범행을 자백했다. 진술 동영상도 촬영했다. 진범이 “황 반장님과 그 외 형사분들께 죄송합니다”라고 진술서에 자필로 썼다. 황 전 반장이 당시 작성한 수사 서류들은 재심에서 결정적 증거가 됐다.

그러나 전주지검 군산지청은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고 그는 말했다. 당시 검사가 시간끌기로 진범에게 면죄부를 주려고 해 답답했다고도 했다.

수사 착수 11개월이 지난 2004년 5월 그는 파출소로 발령이 났다. 30여년 외근 형사로 일했던 그에겐, ‘수사에서 손을 떼라’는 지시와 같은 인사였다. 그는 여러 차례 수사업무 복귀 의사를 경찰서장에게 밝혔으나 거절당했다. 검찰은 사건을 3년간(2003~2006년) 묵혀둔 뒤 종결했다. 이후 진범 등은 말을 바꿔 범행을 부인했다.

2012년 1월 재심을 맡은 박준영 변호사가 황 전 반장을 찾아갔다. 박 변호사가 도움을 요청하자 처음에는 거절했다. 고통스런 과정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 변호사는 우여곡절 끝에 2012년 말 국가기록원에서 사건 자료를 찾아냈고 2013년 4월 재심을 청구했다.

“사실 이 사건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어요. 하지만 2015년 4월 억울하게 옥살이한 최군을 익산 약촌오거리 현장에서 처음으로 만났는데 엄마, 아내, 젖먹이 아이와 함께 나왔더라고요. 그 모습을 본 순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억울함을 풀어주지 못한 미안함이 있었는데, 제대로 돕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재심 재판 증인으로 출석하고 박준영 변호사와 수사 자료를 함께 검토했다.

“직무유기를 한 검사가 좀 솔직해졌으면 좋겠어요. 정말 자존심이 있다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조직과 명분을 지키는 것도 좋지만, 진실과 인권이 더 중요한 것 아닙니까.” 이 사건을 재수사하는 전주지검 군산지청은 19일 진범으로 지목된 김아무개(35)씨를 강도살인 혐의로 구속했다.

황 전 반장은 무죄가 선고된 날 최씨에게 “이제 범인이 아니니까 고개를 들고 당당하게 살아라”고 말했다. 사건 당시 16살이던 최씨는 지금 30대 초반이 됐다. 강산이 한 차례 변한 세월을 억울하게 감옥에서 보내고, 무죄를 위해 6년을 더 견딘 최씨와 그 가족에게 위로를 전했다. 그는 “때로는 자신처럼 미친 사람이 있어야 묻혔던 진실도 밝혀지는 것 아니겠느냐”며 웃었다.

“사회적 약자를 생각하면 법원의 재심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봅니다. 검찰과 사법부의 자기 보호 벽이 너무 높습니다. 명백한 증거가 새로 있다면 그 벽을 완화해야 합니다. 재심이 결정됐다면 그 뒤부터는 빠른 재판 진행이 필요합니다. 보통 몇 년이 걸리는 데 당사자는 지쳐갑니다. 상처받은 인생이 더욱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지요.”

글·사진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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