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공판기일에서 혐의 대부분 부인
전 부장검사가 법정에 들어섰다. 그는 법정 왼편의 검사석 대신 오른편 피고인석으로 향했다. ‘스폰서 검사’로 알려진 김형준(46) 전 부장검사다. 5분 뒤, 그에게 수천만원대 금품과 향응을 제공한 혐의를 받는 고교 동창 김아무개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금품과 청탁을 주고받았던 ‘30년지기’ 친구는 이날 나란히 녹색 수의를 입고 법정에 섰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재판장 남성민) 심리로 22일 오후 열린 김 전 부장검사에 대한 첫 공판기일에서 김 전 부장검사는 혐의를 상당 부분 부인했다. 김 전 부장검사는 “피고인석에 서게 돼 큰 자괴감을 느끼고 잘못에 대해 반성하고 있다”며 “20여년 가까이 몸담았던 검찰에서 특별감찰팀을 통해 수사가 이뤄지고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 자체에 가슴이 먹먹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5차례에 걸쳐 김씨로부터 1900만원을 받았다는 혐의는 전혀 진실이 아니고, 허공에 떠 있는 허위사실”이라며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 김씨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현금 1500만원을 계좌로 건네받은 혐의에 대해서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곧바로 변제했다”고 했다.
김 전 부장검사의 변호인은 김씨와 수차례 술자리를 가진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향응을 받았거나 직무 관련성이 있었다는 내용은 대부분 부인했다. 또 “사기 및 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던 김씨가 여러 목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김 전 부장검사와 술자리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김 전 부장검사가 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김씨와 김씨의 동료 수감자를 수차례 검찰 청사로 불러 편의를 제공한 혐의에 대해서도 “내사 목적이었을 뿐 향응과 금품의 대가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고교 동창 김씨는 곧이어 그의 말을 반박했다. 혐의를 모두 인정한 김씨는 “김 전 부장검사가 자신의 비위를 무마하기 위해 증거를 조작하고 나를 속였기 때문에 대검찰청에 자백했다”고 말했다.
김 전 부장검사는 2012년 5월부터 지난 3월까지 김씨로부터 5800만원 상당의 금품·향응을 건네받은 혐의(특정범죄의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의 뇌물)로 구속기소됐다. 또 자신의 비위 사실을 감추기 위해 김씨에게 휴대전화와 수첩 등 증거를 없애도록 한 혐의(증거인멸교사)도 있다. 법무부는 지난 4일 검사징계위원회를 열어 김 전 부장검사의 해임을 의결했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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