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대 민주화교수협의회 주최로 ‘벼랑 끝의 한국, 위기 극복의 길을 찾는다’ 시국대토론회가 열렸다. 김상연 서울대 학생이 ‘2016년 항쟁의 향방과 대학생 투쟁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사진 고한솔 기자
계속 촛불을 들기만 하면 박근혜 정권이 물러나고, 사회 체제와 구성원의 삶은 나아질까?
광장에 선 많은 시민들은 희망과 불안을 동시에 느낀다. 23일 서울대 민주화교수협의회가 주최한 시국 대토론회 ‘벼랑 끝의 한국, 위기 극복의 길을 찾는다’는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이런 물음에 대해 어떤 답을 제시하는지 살펴볼 수 있는 자리였다. 토론자들은 대부분 ‘박근혜 퇴진’이 아닌 ‘퇴진 이후’에 초점을 맞췄다.
최갑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지금 국면을 혁명사의 관점에서 짚었다. 최 교수는 “박정희 신화의 ‘72년 체제’가 해체되는 조짐이 보이지만, 저항 담론은 아직 삶을 억압하는 불평등구조 자체를 문제 삼지 못하고 있다”며 “과거 민주화운동의 한계와 실책을 성찰하고 ‘입헌혁명’을 집단적 지성의 성과물로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 교수는 “오는 26일 전국적으로 300만명이 모이면 ‘양-질 전환’을 통해 역사의 새로운 분기점이 형성될 것”이라며 “한국 사회 전 영역에서 국가개조에 준하는 국정쇄신을 강구하고, 중장기적으로 숙의 민주주의와 참여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토대로 개헌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은 “현행 헌법은 분명히 한계가 있지만 더 큰 문제는 현행 법률과 규범이 이 헌법조차 제대로 구현하고 있지 못하는 것”이라며 “지금 사태는 ‘헌법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헌법에도 불구하고’ 발생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 연구원은 “우리 사회는 여러 법률에 의해 소득 분배, 노동권, 공정경쟁, 정치적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극도로 제약돼 있다”며 “2016년 광장의 정치가 휘발성의 경험으로 남지 않으려면, 법률을 개정해 시민권을 전면적으로 보장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논의를 선거제도에 국한했다. 하 대표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대한민국이라는 집이 잘못된 정치제도로 설계돼 지붕에 물이 새다가 마침내 폭포처럼 물이 쏟아져 들어와 사람이 살 수 없게 된 것”이라며 “북유럽 등 사람들이 비교적 행복하게 사는 복지국가들은 핵심적으로 정당득표율과 의석을 최대한 일키시키는 선거제도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비례대표제와 다당제를 통한 합의제 민주주의를 채택한 국가들은 권력이 분산돼 있을 뿐 아니라 임금 수준, 노조조직률, 투명성 등 삶의 모든 측면에서 높은 수준의 지표를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 개혁의 필요성과 방법론을 펼쳤다. 조 교수는 “검찰이 청와대 민정수석의 눈치를 보다가 갑자기 박근혜 정권에 대해 전면적인 공격에 들어간 것은 무엇 때문일까”라고 질문을 던지고 “검찰의 기본 속성은 죽은 권력과 싸우고 산 권력에 복종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조 교수는 “정권이 바뀌어도 독자적인 권력은 여전히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검찰은 내부적으로 부패하는 것”이라며 “여·야 합의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수장을 임명한다면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고 비리 공직자를 내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국처럼 검찰 수뇌부를 국민들의 선거로 뽑고, 검찰이 독점한 수사권을 경찰과 나눠 갖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송주명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상임의장(한신대 교수)은 대통령 탄핵론과 퇴진론의 한계를 함께 짚으면서 “박근혜 정권을 퇴진시켜야 한다는 국민적 열망이 쉽게 꺾이지는 않을 것이다. 정치권과 헌법재판소의 탄핵 일정을 넘어서기 위해 세월호, 국정교과서 등의 주체들이 정치적으로 더욱 조직화되어 싸워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안영춘 고한솔 기자 jona@hani.co.kr[관련 영상] 한겨레TV | 더 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