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수석실 압수수색 검찰수사관들이23일밤서울종로구정부서울청사창성동별관에 있는 청와대정무수석실특별감찰반에대한압수수색을 한 뒤압수물품을 담은 상자를 차량에 싣고있다. 공동취재사진
청와대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수사 초기에 검찰 조사 내용을 미리 확보한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이 나왔다. 청와대 관계자들이 검찰 수사에 대비해 말맞추기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됨에 따라 이 부분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가 지난 20일 법원에 제출한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조정수석 등의 공소장을 보면, 안 전 수석의 수석보좌관인 김아무개씨는 지난 10월22일 밤 10시에 검찰 조사를 하루 앞둔 케이스포츠재단의 김필승 이사와 만났다. 김 이사는 최순실씨의 심복으로 재단 설립 과정에 깊숙이 관여한 인물이다. 김씨는 김 이사에게 자신이 작성한 문건을 건넸다. 바로 전날인 21일 검찰 조사를 받은 미르재단 관계자 2명과 정동구 케이스포츠재단 초대 이사장의 검찰 진술 내용과 검찰 조사 대응방안 등이 담긴 문건이다. 김 이사는 23일 검찰 조사를 앞두고 있었다.
이 때문에 안 전 수석의 보좌관인 김씨가 어떻게 정 전 이사장 등의 검찰 조사 다음 날 그의 진술 내용을 확보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당시는 검찰 수사는 초기단계로 아직 특별수사본부가 꾸려지기 전이었다. 한웅재 형사8부장 등을 포함해 4~5명의 검사가 수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청와대가 미리 검찰 수사 내용을 알았을 가능성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먼저 청와대 쪽이 정 전 이사장을 직접 접촉했을 가능성이다. 그러나 정 전 이사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검찰 조사 뒤 청와대는 물론 관련자들을 접촉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둘째, 기존 언론보도를 종합해 검찰 조사를 대비하는 문건을 만들었을 수 있다. 하지만 정 전 이사장은 언론 인터뷰를 한 사실이 있지만, 나머지 실무자 2명의 보도내용은 찾기 힘들다.
남는 가능성은 검찰이 대검 등에 보고한 내용을 청와대에서 확보해 미리 ‘말맞추기’를 했을 가능성이다. 당시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이 사퇴하기 전으로 청와대가 검찰 수사에 대응하기 위한 문건을 작성한 정황이 보도되기도 했다. 검찰의 압수수색과 국정감사가 이뤄지기 전인 10월 청와대 홍보수석실에서 차은택씨를 접촉하고, 청와대 정책조정실에서 경제계나 미르·케이스포츠 재단 사람들을 접촉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이 문건에 대해 김씨는 검찰 조사에서 정 전 이사장의 검찰 진술 내용 등을 상상해서 막연하게 기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언론보도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상상만으로 검찰 진술을 기재했다는 부분은 선뜻 믿기 어렵다. 이 때문에 당시 청와대가 수사 정보를 미리 빼돌린 의혹에 대해 구체적인 수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 관계자는 “공소장에 적힌 부분은 안 전 수석의 증거인멸 교사 혐의와 관련된 내용이다. 공소장은 안 전 수석이 김씨를 통해 전자우편 삭제를 지시한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때문에 김씨가 정 전 이사장 등의 검찰 진술 내용을 막연하게 기재했다는 부분은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안 전 수석은 김씨를 통해 증거인멸을 한 혐의에 대해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건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29부(재판장 김수정)는 최씨와 안 전 수석에게 다음달 23일까지 '변호인 외 접견금지' 명령을 내렸다. 접견 온 지인 등을 통해 증거인멸을 하거나 수사 관련한 사항이 관련자들에게 누설되는 것을 막아달라는 검찰의 신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다만 안 전 수석은 배우자, 부모, 자녀의 접견까지 금지되진 않았다.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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