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불금’ 저녁 서울 서초동의 한 호텔. 문아무개(39)씨는 고단한 일주일 마침표를 찍기 위해 호텔 사우나로 향했습니다. 물거품이 보글보글 나오는 히노키탕으로 들어서던 찰나, 문씨의 오른쪽 발이 배수구 안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물거품이 바닥을 가리는 바람에 열려 있던 배수구를 미처 보지 못한 겁니다. 이 사고로 엄지발가락 주변 신경이 파열됐고, 문씨는 일주일간 병원 신세를 지어야 했습니다. 문씨는 시설관리자 최아무개씨와 호텔을 운영하는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습니다.
법원은 최씨에게 책임이 있다고 봤습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5부(재판장 이흥권)는 지난 9월 “이용자가 열려 있는 배수구로 인해 다치지 않도록 출입을 통제하거나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리는 등 경고 표시를 설치해 안전관리조치를 할 의무가 있다”며 최씨와 회사가 문씨와 문씨 가족에게 785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호텔 쪽은 문씨가 탕의 바닥을 충분히 확인하지 않았다고 항변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외려 “히노키탕은 물거품이 나오는 탕으로 이용자로선 직접 탕에 들어가 보기 전까진 바닥의 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공중목욕탕이나 사우나는 일상적인 것들이 위협이 되는 공간입니다. 맨몸으로 이용하기 때문에 날카로운 데 노출되거나 미끄러운 바닥에서 살짝만 중심을 잃어도 크게 다치기 쉽습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해 법원도 목욕탕 관리자 쪽에 관리 책임을 엄격히 묻는 추세입니다. 이용자가 볼 수 있도록 경고 표시나 경고문을 부착하고, 충격을 줄일 장치를 마련해둬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안전장치 설치를 게을리했다가 배상금을 물어주게 된 경우를 볼까요? 2014년 11월 김아무개(56)씨는 경북 영주의 한 리조트 목욕탕에서 목욕을 마치고 나오다 출입문에 왼쪽 새끼발가락이 끼여 절단됐습니다. 이 경우에도 법원은 리조트 쪽 책임이 더 크다고 봤습니다. 춘천지법 속초지원 민사1단독 황지애 판사는 “이용객들의 보행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을 고려해 문이 여닫히는 속도를 조절해 갑작스런 문닫힘을 방지했어야 한다”며, 지난달 25일 리조트 쪽이 김씨에게 92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또 리조트 쪽이 “미끄럼으로 문 사이에 신체 일부가 끼게 되더라도 충격을 줄일 수 있는 장치를 부착하는 등 조처를 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다만 이용자 스스로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점을 고려해 김씨에게도 25%의 책임이 있다고 봤습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목욕탕 내 물기로 인해 이용객들의 보행이 원활하지 않은 사정을 고려했어야 한다’고 언급했는데요. 물기를 피하기 어려운 욕탕 안에서 미끄러져 다친 경우는 어떨까요? 이럴 때도 법원은 목욕탕 쪽이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봅니다. 2008년 8월 서울 서초구의 한 공중목욕탕에서 신아무개(57)씨는 온탕 안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손잡이용 난간에 왼쪽 갈비뼈를 부딪쳤습니다. 이 사고로 갈비뼈가 부러지자 신씨는 목욕탕 운영자 양아무개씨와 보험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습니다. 목욕탕 운영자 쪽은 “온탕 주위에 ‘미끄럼 주의’라고 표시된 안내판을 설치했고, 손잡이용 난간을 둥근 파이프 형태로 만들어 피해를 줄였다”고 항변했지만, 법원은 목욕탕 쪽 책임이 더 무겁다고 봤습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부(재판장 윤성원)는 “온탕의 바닥은 맥반석이나 스테인리스 재질로 상당히 미끄럽다. 목욕탕 운영자 쪽은 미끄럼 사고를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방지 조처를 하지 않았다”며 보험회사와 함께 신씨에게 56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전반적으로 법원이 목욕탕 바닥의 물기를 심각한 ‘위험’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형식적인 경고 표시 설치로는 부족하고, 충격 방지 장치까지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항상 목욕탕 운영자 쪽이 모든 책임을 부담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용자도 충분히 주의를 다 하지 않았다면 책임이 일부 인정됩니다. 이 판례에서도 신씨가 “온탕 바닥이 미끄러운 것을 알 수 있었음에도 신중하게 이동하는 등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며 목욕탕 쪽 책임을 30%로 제한했습니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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