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의 장교였다. 각지의 유대인을 열차에 실어 강제수용소로 보내던 담당자. 어찌나 ‘열심’이었는지, 유대인 수백만명이 이 사람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전쟁이 끝나자 신분을 바꾸고 도주. 리카르도 클레멘트라는 이름으로 아르헨티나에 살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정보원들에게 체포되어 예루살렘의 법정에 섰다. 사형선고를 받은 날이 1961년 12월15일.
세계는 깜짝 놀랐다. 너무 평범한 사람이라서 그랬다. 재판 과정을 취재한 사람이, 유대인 탄압을 피해 미국에 망명했던 철학자 한나 아렌트. 아렌트가 보기에 아이히만은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다만 비판적 검토를 할 줄 몰랐다는 것. 이 일을 다룬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년)은 20세기의 고전이 됐다. 부제는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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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이히만이 평범하지 않은 악당이었다는 분석도 있다(이동기 교수). 한편 미국에서는 ‘리틀 아이히만’이라는 말이 남발되어 문제란다. 한국으로 치면 ‘우리 안의 일베’나 ‘우리 안의 최순실’처럼 ‘우리 안의 아이히만’이라는 표현이 너무 자주 쓰이는 상황이랄까. 평범한 수사가 되지 않도록 ‘악의 평범성’ 개념도 종종 비판적으로 검토해 봐야겠다.
글 김태권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