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등 수사 대상
올해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뇌물 의혹
최순실씨와 삼성 등의 수백억 원대 거래에 초점
올해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뇌물 의혹
최순실씨와 삼성 등의 수백억 원대 거래에 초점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21일 국민연금공단을 첫 강제수사 대상으로 삼으면서, 이번 특검의 주 ‘타깃’이 삼성의 경영권 승계 과정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삼성은 지난 2008년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필요한 주식 편법 증여 과정이 특검 수사 대상이 된 데 이어, 이번에는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경영권을 다지기 위한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이 수사 대상에 올랐다.
지난해 7월 이뤄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이 부회장에겐 ‘신의 한 수’와 같은 것이었다. 이 부회장은 이 합병으로 통합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가 되면서, 삼성그룹의 순환출자 구조를 단순화시키고 그룹에 대한 지배력도 높이는 효과를 얻었다. ‘이 부회장→통합 삼성물산→삼성전자·삼성생명→다른 계열사’로 그룹 지배구조가 정리된 것이다.
삼성은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협조를 끌어내기 위해 최순실씨를 비롯해 청와대 쪽과 모종의 거래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삼성물산 지분 11.61%로 단일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은 자체 산출한 적정 합병 비율(1:0.46)을 외면하고, 삼성 쪽이 제시한 합병 비율(1:0.35)에 찬성표를 던지면서 최소 1000억원대의 손해를 자초했다.
당시에도 국민연금의 결정과 관련해 ‘검은 거래’ 의혹이 제기됐지만, 지난 9월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삼성이 최씨 일가에 따로 80억원대 지원(애초 계획 220억원)을 하고, 미르·케이스포츠 재단에 204억원을 출연하는 등 통상적 수준을 뛰어넘는 금전 거래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의혹의 농도가 짙어졌다. 게다가 박근혜 대통령을 매개로 최씨와 함께 각종 이권 사업에 적극 개입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 등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결국 검찰과 특검의 수사 대상이 됐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도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춰 삼성을 세 차례 압수수색하는 등 공을 들였다. 특히 검찰은 지난달 17일 특검법이 통과돼 검찰 수사가 사실상 마무리 국면에 들어간 뒤인 23일에도 삼성 미래전략실과 국민연금공단을 압수수색하는 등 삼성 수사에 의욕을 보였다. 검찰은 삼성을 재판에 넘기지는 못했지만, 상당 부분 수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검찰 관계자는 “시간이 부족해서 삼성 수사 결론을 못 내려 아쉽지만, 특검이 잘해낼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특검 대변인인 이규철 특검보도 이날 기자 브리핑에서 “(검찰 수사 내용을) 충분히 검토했고 보충적인 차원에서 추가 압수수색을 개시했다”고 말했다.
이번 특검 수사는 김용철 변호사의 비자금 폭로를 계기로 2008년 진행된 삼성 비자금 특검과 비교된다. 삼성 계열사들이 ’대박’이 보장된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인수를 포기하면서 해당 물량이 이 부회장 등 총수 일가에 넘어갔는데, 이를 통해 이 부회장은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인 삼성에버랜드를 지배할 수 있게 됐다. 당시 특검은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의 편법 증여 등을 통해 경영권을 불법 승계하려 했다며 이건희 회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법상 배임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3세 경영권 승계를 위한 주식 양도 및 전환이 8년여의 시차를 두고 다시 한번 삼성의 발목을 붙잡게 될지 주목된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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