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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2016년 말말말 ‘하야하기 좋은 날씨’지 말입니다

등록 2016-12-30 09:34수정 2016-12-30 09:44

박근혜 대통령의 가명이 ‘길라임’이었다는 보도에 누리꾼들이 만든 패러디 화면 갈무리
박근혜 대통령의 가명이 ‘길라임’이었다는 보도에 누리꾼들이 만든 패러디 화면 갈무리

▶박 대통령과 패러디 “내가 이러려고 OOO했나 자괴감”

말은 생각의 표현이다. 말이 꼬이는 건 생각이 꼬이는 거고 생각이 없으면 할 말도 없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말은 주술이 호응하지 않아 무슨 말을 하려는지 좀처럼 진의를 파악하기 어렵다.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이 드러난 뒤 박 대통령이 두번째로 카메라 앞에 섰던 11월4일에 던진 이 한마디도 그랬다.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라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합니다.” 분명 잘못은 본인이 한 건데 “이러려고”가 가리키는 게 명확지 않았다. 담화문 문맥으로 보면 ‘국민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이런 수모를 당하려고 대통령을 했나’라는 한탄으로 읽히는데, 국민을 상대로 공개적으로 할 말은 아니다.

박 대통령의 “이러려고” 발언에 정작 자괴감을 느낀 이들은 ‘듣는 국민들’이었다. 코미디언 김미화씨는 “내가 이러려고 코미디언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합니다. 정치가 이토록 웃길 줄이야”라며 헛웃음을 털어냈다. 최순실을 사칭한 누리꾼은 “내가 이러려고 굿 해줬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라고 토로했다.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라면 “내가 이러려고 의거했나, 괴롭고 자괴감이 든다”고 했을 거라는 상상력도 발휘됐다. 인디밴드 크라잉넛은 촛불집회 공연에서 “요즘 말(馬) 때문에 말(言)이 많습니다. ‘말 달리자’는 원래 우리 거였는데…이러려고 크라잉넛을 하는지 자괴감이 듭니다”라고 꼬집었다.

5월5일 어린이날, 박 대통령은 청와대로 도서·벽지·다문화가정 어린이 300여명을 초청했다. 전남 완도에서 온 초등학교 5학년생이 “발명가라는 꿈을 가지고 있는데 작은 섬에서 발명가가 되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아쉽다”고 하자 박 대통령은 뜬금없이 창조경제혁신센터를 홍보하기 시작했다. 창조경제혁신센터라는 게 각 시·도마다 있는데 학생 때 가도 된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어떤 부분을 연구해야 하는지, 나중에 (제품이) 시장에 나갈 적에 길까지도 안내해준다.” ‘동심 파괴형 동문서답’에 백상웅 시인은 <시사인> 칼럼을 통해 “소년에게조차 창조경제혁신센터를 홍보해야만 하는데 무엇을 더 바랄 수 있을까. 이런 비극은 서둘러 끝내야 옳다”고 꼬집었다.

7월28일 울산으로 깜짝 여름휴가를 떠난 박 대통령은 지역 전통시장을 둘러보며 기이한 언행을 보이기 시작했다. 소라과자를 가리키며 “이거는 뭐라고 그래요?”라고 물었고 고춧가루에도 호기심을 나타냈다. “이게 다 국산 고춧가루로…”라고 말끝을 흐리는 물음에 상인이 “다 국산 고춧가루”라고 답하자 박 대통령은 “고추로 맨든 가루…이건 굉장히 귀하네요”라고 말했다. 시장에서 신문물을 탐방하는 듯한 박 대통령의 태도에 누리꾼들은 “한국에 관광 온 외국인”, “한국말 공부 중인 외국인 체험학습”이라고 비꼬았다. 자기 손으로 물건 한 번 제대로 사본 적 없는, 박근혜 주연 ‘꼭두각시 인형극’의 예고편이었다.

2016년 12월3일 6차 촛불집회에서 등장한 패러디 깃발. 한겨레 박수진 기자
2016년 12월3일 6차 촛불집회에서 등장한 패러디 깃발. 한겨레 박수진 기자
▶촛불집회발 촌철살인 “하야하기 좋은 날씨”

촛불집회 때마다 촌철살인의 패러디가 쏟아졌다. ‘장수풍뎅이연구회’, ‘펭귄보호재단’, ‘민주묘총’, ‘전견련’, ‘국경없는 어항회’ 등 ‘무의미 깃발’은 압권이었다.

광장에 나부낀 손팻말들에서도 풍자와 해학이 번득였다. “휴대폰 배터리도 5%면 교체한다!!” “지지율도 실력이야! 니 부모를 탓해!” “저성과자 박근혜, 해고!”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하야하기 좋은 날씨” “차라리 ‘뽀통령’” “검찰은 똑바로! 순실을 빵으로! 근혜는 우주로!”

연예인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이 땅의 권력자는 5000만이다. 그게 헌법 정신이다. 권력자 여러분, 환영합니다.”(방송인 김제동, 현장토크 인사말) “요새 제가 노래할 때 최순실 그리고 몸통이신 박근혜(대통령)로부터 너무 많은 폭행을 당하는 느낌이다. 이런 날이 또 올지 모르겠지만 주문 외우고 싶다. 샤먼킹을 위해서, 주문을 외운다. 야발라바 하야하라 박근혜.”(이승환 11월12일 서울 광화문광장 3차 촛불집회 무대에 올라) “여러분, 지금 세계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혹시나 박사모가 한 대 때리면 그냥 맞으세요. 우리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서 맞으신 분들 무지 많아요. 그냥 박사모가 뭐라 그러면 예예~ 그러고 가세요. 세계에서 가장 폼나는 촛불시위가 되게 합시다.”(전인권 11월19일 서울 광화문광장 4차 촛불집회 무대에 올라)

평범한 사람들의 ‘사이다 발언’도 답답한 가슴을 뻥 뚫어줬다. “아무것도 모르고 새누리당 보고 박근혜 찍었는데 찍은 내가 미친년입니다. 새누리당밖에 모르고 살았는데 죄송합니다. 여러분….”(부산에서 올라온 아주머니) “선배님께 ‘순실’이 아닌 ‘진실’을 듣고 싶다.”(박근혜 대통령의 모교인 성심여고 학생들) “오늘 집회에 참여하신 시민 여러분 고생 많으셨습니다.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노력하신 시민분들을 목적지까지 최대한 빠르고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지하철 3호선 안내방송)

문재인·안철수·박원순·이재명 등 야권 대선주자들이 참여한 ‘비상시국 정치회의’가 열린 2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참석자들과 전날 촛불시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부겸 의원,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 안희정 충남지사, 국민의당 천정배 전 대표.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문재인·안철수·박원순·이재명 등 야권 대선주자들이 참여한 ‘비상시국 정치회의’가 열린 2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참석자들과 전날 촛불시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부겸 의원,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 안희정 충남지사, 국민의당 천정배 전 대표.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대선주자들의 ‘식품대첩’ 사이다·고구마·김장김치·밥·뚝배기·생수…

“대한민국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제 한 몸 불살라서라도 노력할 용의가 있다.”(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12월20일 뉴욕 특파원단 기자회견에서) 반 총장이 퇴임을 앞두고 한 말로, 사실상의 대선 출마 선언이었다.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12월26일 “촛불 하나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몸을 불사르나”라고 촌철살인으로 꼬집었다.

“무성이 옥새 들고 나르샤”(새누리당 홍보기획본부가 4·13 총선을 앞두고 당시 김무성 대표의 ‘옥새 파동’을 패러디한 동영상 제목)

“광야에서 죽어도 좋다. 세상을 바꾸는 투사 ‘강철수’가 되겠다.”(안철수 의원, 4월 총선 앞두고 선거연대를 강하게 부정하며)

“나는 금수저도 흙수저도 아닌 무수저다.”(이정현 새누리당 의원, 8월 전대에서 자신이 비주류임을 강조하며)

“이재명 시장이 아주 잘하고 있는 건 맞고 정말 사이다 맞다. 어쨌든 사이다는 금방 목이 또 마른다. 탄산음료가 밥은 아니다. 고구마는 배가 든든하다.”(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 12월2일 <티비에스> 인터뷰) 문재인 전 대표가 화끈한 발언으로 지지율이 치솟은 이재명 성남시장을 겨냥해 던진 말이다. 다른 대선주자들의 릴레이 반응이 이어졌다. 이재명 시장은 사이다에 고구마를 같이 먹으면 맛있고 든든하다”며 연대의식을 강조하면서도 재미있게 말하자면 목마르고 배고플 때 갑자기 고구마를 먹으면 체한다. 목을 좀 축이고 사이다를 마신 다음 고구마로 배를 채우면 든든하게 열심히 할 수 있다”고 ‘뼈 있는 농담'으로 응수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사이다처럼 톡 쏘진 않지만, 고구마처럼 배부르진 않지만, 밥상에 빠질 수 없는 김장김치처럼 늘 시민의 광장 밥상에 자리하겠다”란 글을 12월3일 트위터에 올렸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12월14일 <시비에스> 인터뷰에서 저는 언제나 먹어도 질리지 않는 밥이다. 특별식으로 다른 걸 먹을 수 있지만 밥은 질리면 어떻게 살겠는가. ‘고구마와 사이다’는 특식이지만 매일 먹을 수는 없다”고 했다. 김부겸 의원은 12월16일 <에스비에스> 인터뷰에서 “누구는 사이다, 누구는 고구마라는데, 저는 ‘뚝배기’다. 끓는 데는 오래 걸리지만 한번 끓으면…”이라고 말했다. 안철수 의원의 부인 김미경 서울대 교수는 12월15일 <여성동아> 인터뷰에서 “남편은 생수 같다. 이미지도 깨끗하고, 실제 모습도 다르지 않다. 우리 몸의 70~80%를 차지하는, 생명 유지를 위해 필요한 물처럼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생각을 드러냈다.

▶불평등·신계급사회 “코너링이 굉장히 좋았다”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있는 우리 부모 가지고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말고. 돈도 실력이야.”(정유라 페이스북) ‘돈 없고 빽 없는’ 무수한 흙수저들을 허탈감에 빠지게 하며 엄청난 공분을 자아냈다.

“특히 코너링(굽잇길 돌기)이 굉장히 좋았다.”(서울지방경찰청 백승석 경위, 국정감사에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아들을 운전병으로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며)

“우리는 우연히 살아남은 여성입니다.”(5월 강남역 살인사건 뒤 강남역 10번 출구에 붙여졌던 포스트잇의 추모 글귀) 묵직한 울림을 만들어내며 온라인 중심으로 여성혐오 반대를 외치던 시민들이 직접 거리로 나선 계기가 됐다.

“나는 너다.”(5월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당시 구의역에 붙어 있던 포스트잇) 구의역 참사로 세상을 떠난 김군의 모습 이면엔 하청업체 비정규직 파견근로의 민낯이 숨어 있었다. 부조리한 현실을 자신의 문제로 인식한 청년들이 목소리를 내는 계기가 됐다. 구의역 승강장을 채웠던 포스트잇 메시지들은 <나는, 또한 당신입니다>란 책으로 엮였다.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 7월7일 언론과 저녁 자리) 일류대를 졸업하고 23살에 행시에 합격한 엘리트 관료가 “신분제를 정했으면 좋겠다” 한 발언으로 커다란 파장을 불렀다. 나씨는 결국 파면됐다.

“우리는―서로의―용기가―될 거야.”(트위터에서 문단 내 성폭력 등을 고발할 때 누리꾼들이 서로 지지해주며 올린 트위터 해시태그)

▶재벌 3세의 한마디 “저보다 훌륭한 분이 있으면 경영권 넘기겠다”

“저보다 훌륭한 분이 있으면 (경영권을) 언제든지 넘기겠다. 제가 항상 하는 일이 저보다 우수한 분을 회사로 모시고 오는 거다.(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12월6일 국회 청문회에서) 이 부회장이 경영권을 맡지 않을 수도 있다고 언급한 것은 처음인데, 아직 자신보다 훌륭한 경영자를 찾지 못했단 얘기냐는 비판도 나왔다.

“청와대 몫이 3분의 1, 금융당국이 3분의 1, 산은 몫이 3분의 1이다.”(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이 5월 언론 인터뷰에서 산업은행 자회사의 낙하산 인사에 대한 질문에)

“(청와대에서 시킨 일인데) 내가 잘못한 게 뭐가 있느냐.(이승철 전경련 부회장, 12월6일 국회 청문회 이후 전경련 간부 회의에서) 정경유착의 주역이었지만 전경련 쇄신안을 자신이 주도하겠다는 뜻을 보여 빈축을 샀다.

“우리나라 재벌이 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조직폭력배 운영 방식과 같다.”(주진형 전 한화증권 사장, 12월 국회 청문회에서 참고인으로 참석해)

▶눈 앞에 나타난 인공지능 “이세돌이 패한 것일 뿐, 인간이 패한 것은 아니다”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5월 개봉한 영화 <곡성>에서 악귀에 씐 소녀 효진(김환희)이 아버지 종구(곽도원)를 향해)

“언니야, 이제 고마 집에 가자.”(2월 개봉한 일본군 ‘위안부’ 소재 영화 <귀향>에서 14살 소녀 정민이 함께 끌려온 15살 영희에게)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리우올림픽 펜싱 남자 에페 개인전 결승에서 박상영이 상대에게 10-14로 뒤지다가 15-10으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면서 되뇌던 말)

“~하지 말입니다.”(한국방송 드라마 <태양의 후예> 주인공 송중기의 대사로 유행어가 됐다.)

“이세돌이 패한 것일 뿐, 인간이 패한 것은 아니다.”(이세돌 9단, 구글 인공지능 알파고와 제3국 이후 인터뷰) 1승4패, 알파고의 ‘승리’는 이세돌의 ‘값진 패배’였다. 이세돌은 “원 없이 즐겼다”고 했다.

▶벼랑끝 세상 “또 다른 세계 가능하다고 외쳐야 한다”

“세계는 우리를 거의 파국으로 몰고 갔던 신자유주의의 이상에 의해 추진된 긴축정책이라는 위험한 프로젝트에 사로잡혀 있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가능하고,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며 필요하다고 외쳐야 한다.”(켄 로치 감독 5월22일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제69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소감)

“그것은 라커룸(탈의실) 대화였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 10월 후보자 텔레비전 토론에서 자신이 등장하는 ‘음담패설 동영상’ 내용을 해명하며)

“언젠가 누군가가 유리천장을 깨길 바란다.”(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11월 대선 패배 연설에서)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사회·경제·문화·스포츠·국제부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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