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마지막날인 31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촛불을 치켜든 채 `송박영신' 을 축하하는 폭죽을 쏘아올리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새해에는 부패·비리 같은 말들이 사라지고, 나라 걱정 없는 평화로운 일상을 되찾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2016년 마지막 날 친구들과 함께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을 찾은 김예진(20)씨는 노란 종이배에 “박근혜 정권 즉각 퇴진” “비리·청탁이 사라진 나라”라고 새해 소원을 적었다. 김씨는 “좋은 직장 다니고, 돈 많이 벌고… 이런 소원도 생각났는데 나라가 잘돼야 이런 바람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광화문광장에선 ‘#송박영신 #국민토크 새해 새나라, 소원 3개를 말해봐’ 종이배접기 행사가 열렸다.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이 주최한 이 행사에서 시민들은 노란색 종이에 새해 소원을 적은 뒤 종이배를 접었다. 작은 종이배들은 광장에 모여 거대한 세월호 모양을 이뤘다.
12월31일 마지막 날 시민들은 광장에 모여 한마음으로 ‘송박영신’(送朴迎新·박 대통령을 보내고 정유년 새해에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맞는다)을 기원했다. 제10차 촛불집회 ‘송박영신 범국민행동’ 본집회에 앞서 열린 각양각색 사전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한결같이 ‘부패·비리 없는 새해’를 소망했다.
‘헌법재판소에 엽서 쓰기’ 행사에 참여한 신재규(45·울산 거주)씨는 ‘박근혜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부디 좋은 사회에서 아이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현명한 판단 부탁드린다’고 엽서에 적었다. 신씨는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가장들 모두 ‘먹고살기 힘들다’ 아우성이다. 탄핵이 빨리 인용되고 더 나은 대통령을 뽑아 고장 난 사회를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아무깃발대잔치’에는 그동안 집회에 등장했던 재치 넘치는 깃발이 총출동했다. ‘화분안죽이기실천시민연합’, ‘고혈당’, ‘전국고양이노동조합’ 등 톡톡 튀는 깃발이 등장해 촛불집회에 웃음과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날 탄핵 가결 이후 최대 인원인 전국 110만4천명이 촛불집회에 참여해, 10차에 걸친 촛불집회 참여인원수가 누적 인원 1000만명을 돌파했다. 지난해 10월29일 3만명으로 시작한 촛불집회는 그해 12월3일 6차 집회에서 참여 인원 232만명으로 사상 최대 인원을 기록했다. 주최 쪽인 퇴진행동은 “단일 의제로 1000만명의 시민이 광장에 집결한 것은 사상 처음”이라고 밝혔다.
1월 입대를 앞둔 정성우(21)씨는 “그동안 사람들이 불의에 침묵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아서 이 나라에 희망이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촛불집회에 100만, 200만의 시민들이 참여하는 것을 보면서 ‘아직 살만하구나’하고 느꼈다”며 “입대하기 전 박 대통령이 하야하거나 탄핵 인용되는 게 새해 소망”이라고 말했다. 직장인 한재영(35)씨는 “대통령 탄핵을 밀어붙였다는 점에서 국민의 힘을 확인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며 “박 대통령은 ‘내 꿈이 이뤄지는 나라’를 모토로 당선됐는데 그건 일부 소수 권력자의 꿈이었다. 새해는 국민의 꿈이 이뤄지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고 새해 소망을 전했다.
시민들은 새해를 적폐를 청산하고 새 가치를 정립할 중요한 기점으로 봤다. 동생과 함께 광장에 나왔다는 양현우(59)씨는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이 최순실 같은 괴물을 만들었다. 2017년은 돈보다 생명·청렴 같은 가치를 중시하는 사회로 나아갈 중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김태연(45)씨는 “새해엔 구의역 승강장 사고나 세월호 참사같이 억울하게 죽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새해에도 촛불은 계속 타오를 예정이다. 헌법재판소가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인용할 때까지 촛불집회는 계속된다. 퇴진행동은 “7일 새해 첫 토요일은 세월호참사 1000일(1월 9일)을 맞아 희생자를 추모하고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촛불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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