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에서 체포된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는 2일(현지시각) 덴마크 올보르 지방법원에서 한국 기자들을 만나 여러 질문에 답했다. 이화여대 학점 특혜 의혹이나 삼성의 승마 지원 문제, 비덱스포츠 등 거의 대부분의 의혹에 대해 “모른다”고 말했다. 모두 ‘엄마가 알아서 한 일’이라는 것이다. 법적 처벌을 피해 가려는 ‘준비된 답변’으로 보인다. 정씨의 답변에서 알 수 있는 것과, 논쟁이 될 만한 지점을 정리했다.
1. 대통령 이야기, 최순실에게 들은 것 없다?
정씨는 모든 일이 어머니 최씨가 한 일이고, 어머니의 일에 대해선 전혀 모른다며 그 이유 중 하나로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해명을 내놓았다. 특히 임신 등으로 갈등을 빚었을 무렵부터 대화도 거의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기자들이 ‘심경 한 마디를 이야기해 달라’고 할 때도 “아이가 보고싶다”며 “아이 낳고 어머니랑 계속 싸우게 되니까, 재산 포기 각서까지 쓸 정도로 사이가 틀어졌었는데, 남자친구가 맘에 안 드시는지 문제가 이어졌다. 어머니랑 아예 대화를 안 하는 사태도 있었고, 박(원오) 전무를 끼고 어머니와 이야기하는 상황까지 왔다”고 불화를 계속 강조했다.
박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최씨로부터 전해 들은 적 없느냐는 질문에는 “그 때 임신 중이어서 어머니랑 완전히 사이가 틀어져서 아예 연락을 안 할 때였다. 저는 신림동에 살고 어머니는 강남구에 살던 때여서 알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정씨가 2015년 5월에 출산했고 그해 1월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임신 25주차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는 것을 보면, 임신 시기는 2014년 7월 말~8월 초로 추정된다. <티브이조선>은 2014년 7월께 최씨가 조직폭력배를 찾아가 ‘집을 나간 딸과 남자친구 사이를 갈라놓아 달라고 부탁했다’고 지난 11월 보도한 바 있다. 정씨는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6월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전을 치렀고, 2014년 9월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정씨는 “박근혜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본 게 거의 아버지(정윤회)가 일하실 때 봤다. 그게 제가 초등학교 때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씨가 경복초등학교를 다닌 것은 2003년부터 2008년까지다.
2. 최경희 이대 총장이 최순실과 학점 특혜 의논?
이화여대 학점 특혜 의혹에 대해서도 정씨는 “모르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정씨는 2015년 5월 출산 전후로 한 번도 수업에 출석하지 않았으나 학점을 받았다. 그는 “2016년도에 제적이 될 줄 알았는데, 제가 입학하고 나서 처음으로 (2016년에) 어머니랑 학교를 가서 류철균 교수와 최경희 총장님을 만났다. 저는 먼저 왔고, 어머니는 학교에 있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아예 몰랐는데 학점이 나왔다”고 주장했다.
최경희 총장은 지난달 국회 청문회에서 “최순실을 만난 적 있지만 학부모로서 만난 것이고, 입학 비리나 학점 특혜 등은 모르는 일”이라고 증언했다. 위증 의혹이 제기된다. 정씨에게 학점 특혜를 주고 조교에게 대리시험 답안지를 작성하라고 지시한 의혹을 받고 있는 류철균 교수도 혐의가 한층 짙어지게 됐다.
3. 하나은행 ‘특혜대출’엔 준비된 답변 술술
이들 모녀가 독일로 이주한 뒤 정착할 땅을 사들였는데, 그 자금은 KEB하나은행 독일법인이 ‘19살 정유라’의 개인 명의로 4억5000여만원(36만유로)을 대출해 준 것이다. 개인 명의임에도 기업들이 무역거래를 할 때 쓰는 ‘보증신용장’을 국내(하나은행과 통합 전 옛 외환은행 압구정중앙지점)에서 발급 받은 덕분이다. 쉽게 말하면 정씨를 위해 국내 은행이 보증을 서 준 셈이다. 정씨가 독일서 적용받은 대출 금리는 0% 후반대였다. 이 대출을 2015년 12월 승인한 하나은행 독일법인장은 임원으로 영전했다(▶관련기사 : KEB하나은행, 정유라 특혜대출 의혹)
독일로 돈을 송금하면 간단한 일인데, 굳이 현지에서 유로화 대출을 받은 것은 국외 송금시 신고 의무(외환거래법)를 피하려는 꼼수로 보인다. 해외로 재산을 빼돌리기 위한 ‘돈세탁’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뿐만 아니라 정씨는 대출 과정에서 페이퍼컴퍼니인 비덱 재직증명서를 냈기 때문에 독일 검찰이 수사 중인 돈세탁 문제에서 최씨와 ‘공범’으로 몰릴 수 있다.
정씨는 이 부분에 대해선 마치 준비한 듯한 답변을 술술 쏟아냈다. “그거는 제가 확실하게 설명드릴 수가 있는 게, 아버지 몫의 강원도 땅을 제가 인수를 받고 외환은행에서 담보를 잡았다. 그래서 총 2차례에 걸쳐서 36만유로를 대출을 받았다. 그래서 1원 한 장 저희 돈 안 쓰고, 그 대출만으로 이 집을 샀다.” 국내에서 ‘보증신용장’을 받을 때 부동산 담보를 잡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해명이지만, 담보가 있다 해도 19살 대학생이 수출 기업들이 발급받는 ‘보증신용장’을 발급받을 수 있었던 배경엔 의혹이 쏠린다.
정씨는 또 비덱의 주주(30%)로 독일에서 자금 세탁 혐의를 받고 있는 점을 의식한 듯 “회사 일은 아예 모른다”고 강조했다. 그는 “조세포탈 그런 것도 저희가 독일에서도 세무사를 쓰면서 세금을 다 냈다”며 먼저 ‘조세포탈’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저는 회사 일 같은 건 아예 모르는 게, 항상 저희 어머니가 그런 것 하시는 분이 따로 계시잖아요, 일하시는 분이. 포스트, 이렇게 종이가 있으면 포스트잇 딱딱딱 붙여놓고 싸인 할 것만, 싸인만 하게 하셔서 저는 아예 내용 안에 것은 모르고”라고 덧붙이며 최씨 등에게 책임을 미뤘다.
4. 이경재 변호사·데이비드 윤 연락 안 돼?
정씨는 9월 말부터 줄곧 덴마크에 있었으며, 독일 등지서 도피를 돕는 것으로 알려진 ‘조력자’들과는 최근 한 달 간 연락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12월15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내에서 데이비드 윤씨의 차량으로 보이는 BMW를 타고 발각된 데 대해서는 “비자가 독일 비자고 집이 슈미텐에 있어서 독일에 간 적 있다” “쇼핑은 안 갔다. 돈도 땡전 한 푼(안 썼다)” “데이비드 윤 만난 지가 한 달이 넘었다. 데이비드를 만난 건 확실히…(아니다)”라고 변명했다.
얼마 뒤 기자들이 프랑크푸르트에서 얼마나 머물렀느냐고 재차 묻자 “하루 머물다가 왔다. 찍고 왔다. 프랑크푸르트도 아니라” “슈미텐은 거의 지나쳐서 온 거고, 이 위쪽에 동네 이름은 모르는데, 거기 매매 계약서 때문에 갔다 온 적이 있다”며 횡설수설했다. 정씨 등이 최씨 대신 독일 현지 자금 문제 등을 처리하고 있었다는 의혹이 불거질 법한 대목이다.
정씨는 또 최씨의 변호인인 이경재 변호사와, 조력자로 알려진 데이비드 윤은 연락하지 않는 상태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경재) 변호사님이 바쁘셔서 연락이 잘 안 된다” “데이비드 윤은 책임지기 싫어서 연락이 안 된다” “(데이비드 윤의 보호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저랑 연락 자체를 안 하고 싶어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데이비드 윤씨의 것으로 보이는 BMW 차량이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수차례 드나들었다는 주변 이웃들의 증언도 나오고 있는 상태다. 이 변호사와 연락되지 않고 있다는 정씨의 주장도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다. 이 변호사는 정씨의 체포 소식이 전해지자 “정씨에게 자진해서 국내에 들어와 조사를 받으라고 조언해 왔다”고 언론에 밝혔다.
5. 묻지도 않은 주사 아줌마·차은택 이야기는 왜?
정씨는 세월호 7시간, 최씨의 국정농단 등 박근혜 대통령과 관련한 질문이 이어지자, 최씨에게는 전해들은 게 “없다”면서도 “일단 주사 아줌마 백실장님이 누군지 알 것 같다”고 먼저 말을 꺼냈다. 기자들이 누구냐고 묻자 그냥 “누군지 알 것 같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정씨는 또 “차은택씨도 테스타로사라는 커피숍에서 딱 한 번 봤다”고 먼저 말을 꺼냈다. 이경재 변호사는 지난 2일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을 위해 ‘주사 아줌마’를 부른 것은 최씨가 인정했다”고 말한 바 있다. 앞서 <한겨레>는 최씨의 집과 청와대를 드나든 ‘주사아줌마’에 대해 보도했다. (▶관련기사 : [단독] 정호성 휴대폰에 “주사 아줌마 들어가십니다”) 최씨가 변호인을 통해 인정한 부분까지만 정씨가 다시 한 번 언급하는 등 입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정유라가 덴마크 현지 법정에서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길바닥저널리스트 제공 영상 갈무리.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 씨가 2015년 7월 19일 과천시 주암동 서울경마공원에서 열린 마장마술 경기에 참가하고 있다. 과천/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정유라씨의 대입 특혜 관련 의혹 증인으로 출석한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오른쪽)이 12월15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4차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최순실씨가 소유한 독일 현지 회사 ‘비덱스포츠’와 ‘더블루K’ 등의 주소지로 돼 있는 슈미텐 비덱타우누스호텔. 최씨를 돕는 직원들이 사무실 겸 숙소로 사용한 곳이다. 삼성 계열사 사장이 이곳에 찾아와 최씨를 만났다고 한 교민은 전했다. 슈미텐/송호진 기자
최순실씨가 지난 12월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형사대법정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첫 재판에 입장해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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