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The) 친절한 기자들]
덴마크 남겨진 개·고양이 언론공개에 관심
“동물보호법 엄격한 유럽이라 다행이야”
덴마크 남겨진 개·고양이 언론공개에 관심
“동물보호법 엄격한 유럽이라 다행이야”
새해 벽두부터 동물들이 수난입니다. 조류 인플루엔자(AI)로 3000만 마리의 닭·오리가 살처분된 데 이어 길고양이의 AI 감염 폐사 소식이 들려옵니다. 캣맘들은 안 그래도 겨우살이 팍팍한 길고양이들이 더욱 천대받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지난 2일 애견·애묘인들을 또 ‘심쿵’하게 만든 사진이 한장 있었습니다. 정유라 씨의 은신처 창문 밖으로 ’빼꼼히’ 얼굴을 내민 한 마리의 턱시도 고양이였습니다. 덴마크 경찰에 체포되기 전 취재진의 기척을 느끼고 숨어버린 주인 대신 밖을 내다보는 장면이 포착된 것입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이런 시국에 조심스럽지만, 고양이만은 귀엽다”, “정유라 체포뉴스를 보면서 고양이 걱정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실은 나도 야옹이 너를 걱정했어” 등의 반응이 이어졌습니다. 정씨가 체포되고 난 뒤 주택에서는 고양이 9마리와 개 3마리 등 총 12마리의 반려동물이 발견됐습니다. ‘집사’가 사라진 뒤 혼자 남겨진 개와 고양이들은 운명은 어찌 될까요?
■ 정유라, 그는 ‘애니멀 호더’일까
정유라 씨가 체포되면서 남겨 놓고 간 고양이는 모두 9마리입니다. 눈에 띄는 점은 이들 대부분이 품종 묘인 ‘랙돌(Ragdoll·고양이 품종)’이나 ‘먼치킨’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랙돌은 1960년대 미국에서 개량된 품종으로 국내 분양가가 최소 250만원에서 최대 1000만원 수준으로 알려진 값비싼 인기 품종들입니다.
이런 까닭에 정씨가 ‘애니멀 호더’(Animal Hoarder)가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습니다. ‘애니멀 호더’는 동물을 한 생명으로 사랑하기보다 인형 수집하듯 동물을 사 모으는 데만 관심이 있고 이를 돌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일컫습니다.
아직 폐쇄되지 않은 정씨의 페이스북을 보면, 그는 자신을 ‘랙돌 브리더(Breeder·사육사)’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자기소개에도 “나는 소규모로 랙돌을 사육하고 있다. 나는 랙돌을 사랑하고, 다른 동물들도 모두 사랑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씨가 덴마크로 떠나오기 전 독일에서 키우던 반려동물들은 대부분 영양실조 상태였다고 합니다. 동물 학대 혐의로 현지에서 압수당해 입양 절차를 밟았습니다. 그의 반려견 3마리를 입양한 한 독일인은 “정씨가 개와 고양이 20여 마리를 키우다가 동물 학대 혐의로 독일 경찰 당국에 신고된 뒤 입양을 요청했다. 한 마리는 유난히 말랐고, 모든 개가 겁을 먹고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정씨는 2015년 9월에도 독일에 체류하며 동물 동행 운송 서비스를 이용해 15마리의 개를 사들였고 이를 위해 6000여만원을 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일 덴마크 경찰에 체포될 당시에 그는 2015년생 아들도 데리고 있었습니다. 도피 생활 중에 세 살짜리 어린아이와 20여 마리가 넘는 동물들을 과연 얼마나 적절히 보살폈을지는 의문입니다. ‘동물을 위한 행동’ 전채은 대표는 “정유라 씨는 전형적인 애니멀 호더”라고 평가합니다. 그 근거로 “애니멀 호더는 자신이 동물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특정 종들을 수집한다. 과도한 숫자의 동물과 아기를 함께 키웠다는 것은 아이와 동물들 모두 건강의 위협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동물 학대와 동시에 아동학대의 혐의도 받게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정씨가 인터뷰에서 본인이 ‘펫 로스 증후군’(Pet Loss Syndrome·반려동물이 죽은 뒤 겪는 정신적 상실감과 우울 증상)을 앓았다고 한 발언에도 의심을 표했습니다. “압수당하거나 입양 보내 헤어진 동물들에 대한 상실감은 없고, 유독 죽은 한 마리의 동물에게만 상실감을 느꼈다면 그것은 ‘펫 로스 증후군’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 독일·덴마크라 다행이다
“그 누구도 합리적 이유 없이 동물에게 고통, 괴로움 또는 손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 (독일 연방동물보호법 1조)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유럽연합(EU)이 높은 수준의 동물보호법을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초로 동물보호법을 시행한 독일은 1972년 제정된 연방동물보호법에 의해 동물 학대 금지 행위가 엄격하게 정해져 있습니다. 유기동물들은 전국 500여개의 동물보호소 ‘티어하임’으로 보내지며 원칙적으로 안락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개를 키우는 사람들은 연간 90~600유로의 세금을 내고, 이렇게 거둬들여 진 세금은 ’티어하임’의 운영 기금으로 쓰입니다. 무책임한 교배를 엄격하게 규정하며, 애견 샵·교배 농장 등을 통한 입양이 없기 때문에 유기동물들의 입양률은 90%에 달한다고 합니다.
또한 EU는 동물에게 △기아·갈증으로부터의 자유 △불편함으로부터의 자유 △고통·상처·질병으로부터의 자유 △정상적인 활동을 할 자유 △공포·스트레스로부터의 자유 등 ‘다섯 가지 자유(Five Freedoms)’를 보장하는 것을 동물복지의 기본으로 정의합니다.
은신처 마당에 ‘고양이 창고’를 지어놓고 여러 마리의 고양이들을 키운 정씨의 사육방식이 유럽에서는 정상적으로 비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 반려동물들은 같이 귀국할 수 있을까
덴마크에 남아있는 정씨의 반려동물들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어떤 절차가 필요할까요? 반려동물의 운송과 운임은 각 항공사·노선에 따라 조금씩 다른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반려동물과의 여행은 기내 상황에 따라 가변적이다. 탑승객 1명당 기내 1마리, 위탁 수화물 2마리까지 동반이 가능하지만, 이 또한 목적지나 기종에 따라 다르다”며 “기본적으로 여러 마리의 동물을 한꺼번에 데려오는 것이 용이한 상황은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또한, 국외에서 입국하는 반려동물은 검역 절차도 거쳐야 합니다. 농림축산검역본부의 설명을 보면, 반려동물을 한국에 데리고 오려면 “수출국 정부기관이 증명한 검역증명서를 준비해야 하며 검역증명서에는 개체별 마이크로칩 이식번호와 개체별 연령(생년월일) 등이 기재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시에는 반송 조처가 이뤄집니다. 12마리의 반려동물들이 모두 정씨를 따라 귀국하고 싶은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되려면 구금 상태인 정씨가 미리 준비해야 할 것들이 꽤 많아 보입니다.
돌이켜보면 ’최순실 게이트’를 열어젖힌 것은 한 마리의 강아지였습니다. 지난해 12월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국정조사 2차 청문회에 출석한 고영태 씨는 최씨와 사이가 틀어진 계기가 “최씨가 정유라의 강아지를 맡아달라고 했는데, 골프를 치러 가서”라고 밝혔습니다. 〈비비시〉(BBC)는 강아지가 대통령을 끌어내렸다고 하여 ‘퍼피 게이트’라 비꼬기도 했습니다.
10여년 전 EBS ‘보니 하니’에 출연한 어린 시절 정유라는 말을 사랑하는 소녀였습니다. 그의 동물 사랑이 이렇게 비뚤어진 것은 언제부터였을까요? 딸에게 좋은 말을 사주기 위해, 명문대에 입학시키기 위해, 국가대표를 만들기 위해 온갖 비리를 저지른 최씨의 행동에서 반려동물에 대한 정유라의 어긋난 사랑이 겹쳐 보이는 건 저뿐인가요. 이러려고 정유라 개·고양이로 태어났나 자괴감 들고 괴로울, 덴마크의 축생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무사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JTBC 보도 화면 갈무리
정유라 페이스북 갈무리
SBS 비디오머그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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