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최순실이 세운 더블루케이(K) 사무실이 있는 곳입니다. 이 회사를 통해 각종 이권을 빼돌리려고 했죠. 최순실씨가 권력에 얼마나 집착했는지를 알 수 있는 게, 여기서 ‘더블루’가 의미하는 게 청와대라고 합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빌딩 앞. 역사저술가 한종수씨의 설명에 참가자들이 귀를 쫑긋 세웠다. 순간, 한 일행이 건물 현관에서 나오며 “아직도 책상이 그대로 있다”고 외쳤다. 참가자들이 우르르 좁은 계단을 단숨에 달려올랐다. 굳게 잠긴 더블루케이 사무실의 반투명 현관문 사이로 책상 하나가 우두커니 놓여 있었다. 참가자들은 “이게 바로 역사의 현장”이라며 너도나도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8일 오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과 청담동 일대에서 ‘1차 그네순실로드 기행’이 열렸다. ‘박근혜-최순실게이트’가 실행된 국정농단의 현장 곳곳을 직접 찾아다니며 사태의 본질을 이해하고, 민주주의와 정의에 대해 질문하자는 취지로, <강남의 탄생> 공저자인 역사저술가 한종수씨가 제안한 행사다. 에스엔에스(SNS) 공지를 보고 신청한 10명이 한씨와 동행했다.
한씨는 “박근혜-최순실게이트에 관련된 장소 40여곳 중 강남 아닌 곳은 청와대와 이화여대가 유일했다”라며 “강남이라는 공간적 특질과 이번 국정농단 사태 사이에는 긴밀한 관계가 있다”고 기획 취지를 설명했다.
행사는 현장답사로 이뤄졌다. 최순실씨 조카 장시호가 승마특기생으로 다녔던 현대고등학교를 시작으로, 최순실씨가 다녔던 광림교회·압구정교회 등을 거쳐,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그의 처가 식구들이 살았던 압구정 현대아파트, 최순실·정유라 모녀가 특혜 대출을 받았던 하나은행 압구정중앙지점, 정유라가 다닌 청담고, 최순실씨의 사무실이 있었던 미승빌딩, 그리고 차움의원까지. 총 13곳, 6㎞를 2시간30분 동안 걸었다.
참가자 정희영(50)씨는 “직접 보니 참담하다. 겉보기에는 그냥 똑같이 사람사는 동네인데 그 이면에서 누군가가 부와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던 것 아니냐”고 말했다. 김원식(47)씨는 “단순한 역사탐방이 아니라, 지금 벌어지고 있는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고 있는 것 아니냐”며 “더블루케이 사무실의 책상을 봤을 때는 ‘국정농단의 진실이 밝혀진 바로 그 현장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흥분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순실로드기획위원회는 “2주 뒤쯤 2차 순실로드를 진행할 계획”이라며 “1차가 차움의원에서 종료된 만큼 2차는 김영재 의원 등 의료게이트 현장을 중심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허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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