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 배임으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CJ이재현 회장이 2015년 12월15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선고가 끝난 뒤 휠체어를 탄 채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재상고가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하더라. 사면을 기대하는 것이 현실적인 것 같아서 재상고를 포기했다. 모험하는 심정이었다.”
손경식 씨제이(CJ)그룹 회장은 지난해 11월 검찰 특별수사본부 조사에서 외조카인 이재현 회장의 재상고를 포기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관련 수사기록을 넘겨받은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씨제이가 이 회장 특별사면을 위해 ‘모험’ 대신 ‘청탁’을 택한 정황을 확인하고 ‘사면 거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15일 특검팀이 확보한 안종범(구속기소)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2015년 12월27일치 업무수첩에는 ‘이재현 회장을 도울 길이 생길 수 있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이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횡령·배임·탈세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 회장은 그해 12월15일 서울고법에서 열린 파기환송심에서도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이 회장은 건강 문제로 구속집행정지 상태였다.
먼저 특검팀 등은 손경식 회장이 박 대통령과의 독대 자리 등 최소 5차례 걸쳐 이 회장의 사면을 청탁한 사실을 파악했다. 손 회장은 박 대통령을 처음 독대한 2014년 11월27일“이 회장의 건강이 매우 안 좋아서 걱정이다”라는 취지로 얘기했고, 대통령은 “건강이 안 좋아서 어떻게 하느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 회장의 사면 청탁은 계속됐다. 2015년 1월 씨제이가 투자·배급한 영화 <국제시장>을 함께 관람한 박 대통령에게 ‘선처’를 부탁했고, 그해 2월 서울 상암동에서 열린 ‘문화창조융합센터’ 개소식 때도 “이 회장이 풀려나야 사업이 잘 돌아갈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5월과 6월에도 대통령을 만나 이 회장이 빨리 선처받기 바란다는 이야기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특검팀은 안 전 수석 수첩의 메모가 씨제이의 사면 청탁과 관련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메모 옆에는 ‘재상고→기각→형집행정지 신청(재수감 검찰 결정)’이라는 말이 같이 적혀 있었다. 이 회장이 재판 결과에 불복해 재상고를 한 상황에서, 재상고가 기각되더라도 검찰이 권한을 갖고 있는 형 집행정지 결정 등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 이 회장은 지난해 7월 재상고를 취하하고 다음달인 8월 특별사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재상고는 무죄를 다툴 수 있는 마지막 절차로, 당시 씨제이가 재상고를 포기한 것을 두고 뒷말이 무성했다. 형이 확정돼야만 특별사면 대상이 되기 때문에 씨제이가 청와대 교감 아래 8·15 특별사면을 앞두고 재상고를 취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었다.
씨제이는 지난해 1월 박근혜 정부가 역점 추진하던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에 1조4000억원(경기 고양시 케이컬처밸리)을 투자하기로 했다. 또 미르·케이스포츠재단에도 13억원을 출연했다. 서영지 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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