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천안 한식당 승지원 대표 박갑주씨
박갑주 대표가 한식당 승진원 건물에 내건 펼칠막 앞에서 섰다.
‘그날이 오면’ 대형 펼침막에 ‘약속’
매주 가족과 함께 광화문광장 ‘촛불’ 외환위기로 은행 명퇴뒤 직업 전전
“분배정의 없는 강단 경제학은 엉터리”
천주교 교리 배우며 ‘사회참여’ 공감 그가 시를 내건 것은 지난해 12월초. 물론 ‘그날’은 박근혜 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날이다. 지난 13일 음식점에서 만난 박씨는 “소고기 국밥은 장터의 정을 떠오르게 하는 친숙한 서민 음식”이라며 “그동안 추운 날씨에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에게 따뜻한 국밥을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 탄핵이 결정되면, 하루를 정해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누구에게나 무한정으로 한우 소고기 국밥을 제공하겠다”며 “직원들이 먼저 제안을 했다”고 말했다.국회에서 대통령 탄핵 소추를 의결하고, 수백만 국민이 촛불집회를 열어도 대통령이 버티는 상황이 계속되자, 직원들은 회의를 통해 현수막을 붙이자고 뜻을 모았다고 한다. 한정식과 한우 구이가 주메뉴인 이 식당은 280석 규모에 직원이 35명 정도인 비교적 큰 식당이다. 평소엔 쇠고기 국밥이 메뉴에 없다. ‘그날’을 기리기 위해 새로 준비할 예정이다. 직원들 일부도 식당 지분을 소유하고 있어 주인 의식이 강한 덕분이다. 그는 처음에 정치색이 짙은 현수막을 거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다행히 대부분 손님들은 ‘그날’이 빨리 와서 무료 국밥을 먹고 싶다며 호응해줬다. 지난 8일에는 한 독지가의 초대로 세월호 유가족 30여명이 행사를 마치고 와서 식사를 하기도 했다. 현수막 덕분일까? 불경기 탓에 대부분의 식당이 예전보다 매출이 줄었지만,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라고 했다. 언뜻 시국 정서에 편승한 장삿속이라는 시선도 있지만 박씨는 진지하다. 그는 지난해 10월말부터 주말마다 이어지고 있는 서울 광화문광장 촛불집회에 가족과 함께 여러번 참가했다. “추운 날씨에 몇시간씩 차가운 아스팔트에 앉아 구호를 외치다가 돌아오면 온몸이 얼어 붙는 것 같지만 세상을 바꾸는 일에 동참하고 싶었어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박씨는 졸업하고 은행에 취직했지만 아이엠에프 구제금융 시기 때 명퇴를 해야 했다. 그뒤 지역의 협동조합에서 일하다, 부동산 관련 사업도 했던 그는 7년 전 음식점을 열었다. 천주교 성당을 다니며 뒤늦게 사회교리를 공부했다. “대학에서 배운 경제학은 ‘엉터리 경제학’이었어요. 효율과 성과만 강조했고, 분배의 정의는 가르쳐주질 않았어요. 특히 토지는 경제학에서 꺼려하는 분야죠. 바로 경제적 불평등이 토지에서 시작되니까요.” 그는 천주교 대전교구 사회교리 학교를 마친 뒤 교구의 정의평화위원 활동을 하면서 매년 사회교리 학교와 매달 정세미’(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한 미사와 강연의 준말)에서 봉사하고 있다. “예수님도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어요. 내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변의 모두를 사랑하는 마음이 정말 값지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철이 들었을까요?” 박씨는 요즘 촛불집회에서 얻은 ‘손바닥 헌법책’을 넣고 들고다니며 열심히 읽고 있다. “헌법 전문은 정말 주옥같은 명문입니다. 한 문장 한 문장 새기며 읽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제1조 2항’은 촛불집회에 참석하며 절실히 느낀 내용입니다. 또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라고 쓴 ‘제12조 2항’은 그동안 고문을 받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피와 노력의 결과인지 알게 됐어요.” 2012년 월북 시인 백석의 탄생 100돌을 기념하는 평전과 시집 <시인 백석>을 출판사(흰당나귀)를 차려 펴내기도 했던 그는 “세상이 각박해질수록 ‘시인만이 이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란 말에 큰 공감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날이 오면’ 현수막을 떼내고, 따뜻한 국밥을 대접할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심훈은 그날이 오면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 하거던/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고 했다. 천안/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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