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영장실질심사 위해 법원 출석
‘블랙리스트’ 묻는 기자들 밀치고 입정
‘블랙리스트’ 묻는 기자들 밀치고 입정
“블랙리스트 존재를 여전히 모르나요.” “….” “조윤선 장관이 ‘김기춘 실장님이 시키신 일’이라고.” “….” “한 말씀만요.” “….”
꼭 다문 입술은 자물쇠를 채운 듯 움직이지 않았다. 20일 오전 10시께 서울중앙지법 청사에 도착한 김기춘(78)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청사 입구에 설치된 포토라인에 잠시 서는 것도 거부했다. 가까이 다가와 질문하는 기자들을 밀치다시피하며 법정 안으로 들어갔다. 성난 사진 기자들의 고함이 뒤따랐다.
김 전 실장이 이날 공개적으로 한 말은 “엘리베이터가 왜 안 오나”가 유일했다. 법원으로 가기 전 서울 대치동 특검 사무실에 도착한 그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지 않자 기자들 앞에서 당황한 듯 꺼낸 말이다.
김 전 실장에 이어 3분여 뒤 도착한 조윤선(51)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출석 모습도 김 전 실장과 비슷했다. 조 장관도 포토라인에 서지 않고 쫓기듯 법정 안으로 들어갔다. 김 전 실장은 약 3시간 정도 실질심사를 받았고 조 장관은 김 전 실장 심사가 끝난 뒤인 오후 1시40분부터 심사가 시작돼 오후 4시59분께 심사를 끝내고 법정 밖으로 나왔다.
법정을 나오는 조 장관의 주변에는 덩치 큰 남성들이 여러 명 붙어 사진 촬영을 막다시피했다. 문체부 소속 방호원인 이들은 “공무수행중”이라며 항의하는 기자들에게 맞섰다. 조 장관이 구속되면 현직 장관의 첫 구속 사례가 된다. 한 기자가 물었다. “영장이 청구됐는데 사퇴할 생각 없으세요?” 대답 대신 조 장관의 ‘경호원’이 그를 막아섰다.
김 전 실장은 ‘좌파 성향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과 문화체육관광부 1급 공무원 인사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직권남용)를 받고 있다. 조 장관 역시 재직 때 블랙리스트 작성에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 장관은 최근 특검 조사에서 “김기춘 전 실장이 블랙리스트 작성을 시켰다”고 진술한 것으로 한 언론에 보도됐으나, 조 장관은 즉시 문체부를 통해 “그렇게 진술한 적 없다”고 부인하는 문자를 기자들에게 날렸다.
영장실질심사는 이날 오전 10시30분부터 성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의 심리로 진행됐다. 영장 심사가 끝난 뒤 두 사람은 서울구치소로 이송돼 각각 독방에서 수의로 갈아입고 법원의 결정을 기다렸다. 이들은 이미 증거인멸로 간주될 수 있는 ‘입맞추기’ 정황 등이 드러났고,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과 신동철 전 차관이 구속된 상황이라, 의혹의 정점에 있는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의 구속 가능성이 법조계에서 조심스럽게 점쳐졌다. 하지만 직권남용 혐의가 재판에서 유죄로 인정되는 것이 드물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례처럼 ‘의외의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허재현 현소은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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