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정동춘 전 K스포츠재단 이사장이 24일 오후 오전 재판을 마친 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정동춘(61) 전 케이스포츠 재단 이사장이 “재단을 만든 사람은 대통령이라 판단했다”고 말했다.
정 전 이사장은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김세윤) 심리로 24일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최순실이 케이스포츠 재단 운영 권한을 누구로부터 일부 위임받았냐”는 검사의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다.
정 전 이사장은 “재단 운영의 자문이나 인사문제 등에서 좀 대통령과 많이 협력을 하셨던 것으로 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기업들로부터 기금 출연받고 하려면 대통령 정도 권력이 있어야 재단 설립했을 거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정 전 이사장은 최순실씨가 대통령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아 재단을 실질적으로 운영한 것으로 생각했다는 증언도 했다. 정 전 이사장은 “안종범 전 수석과 최씨가 (당시 재단 내에서 법인 카드 사용 등 문제가 됐던) 감사를 해임하라 말했고, 재단의 중요 결정 과정에서 두 사람이 확인해준 내용이 거의 일치했다”고 말했다. 또 검사가 “대통령이 자신의 뜻을 최순실을 통해 전달하는 것으로 생각했나”라는 질문에는 “일부 그렇게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 전 이사장은 최씨가 재단 운영의 실질적 권한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도 이어 증언했다. 그는 “국제 가이드러너 행사 관련해 인력 지원 받으려고 나사렛 대학과 업무협약 체결하려 했을 때 그게 최순실에게 보고 되었고, 이후 최순실이 자신과 상의도 없이 협약을 체결하려 했다며 취소하라고 한 적 있다”고 말했다.
또 언론이 재단 설립 과정의 문제점 등을 보도하자 전경련이 정동춘씨의 이사장 사의를 요구했고 정씨가 이를 수용하려 하자 독일에 있던 최순실씨가 전화해 “왜 전경련이 시키는 대로 했느냐며 화를 냈다”고 밝혔다. 검사가 “이사진은 형식적인 임원이고 정 전 이사장도 바지사장 노릇을 한 것 아니냐”고 묻자 정 전 이사장은 “비슷하게 생각했다”고 답했다. 정 전 이사장의 이러한 설명은 케이스포츠 재단의 설립과 운영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최순실씨 주장과 대비되는 증언이다.
또 정 전 이사장은 안종범 전 수석이 자신에게 “박근혜 대통령에게 최순실씨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금기시하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진술했다.
이날 검찰은 정 전 이사장과 안 전 수석이 지난해 10월13일 통화 녹음 내용을 공개했는데 정 전 이사장이 통화에서 케이스포츠 재단의 여러 혼란스러운 사항에 대해 말하자 안 전 수석은 “브이아이피(대통령)가 저한테 최여사(최순실) 이야기 한 적이 없고 전혀 모르는 부분이다. 말씀을 해주시면 좋은데 저한테 전혀 안하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 전 이사장은 “이전 통화에서도 안 전 수석은 저에게 ‘최 여사 얘기 하지 마라’, ‘대통령에게 최여사 얘기하는 것은 금기다’라는 취지로 말했었다”고 증언했다.
청와대에서 최순실씨가 재단 운영과 설립에 개입한 사실이 외부에 새어나가가는 것을 조심하려 한 대목으로 읽힌다.
허재현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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