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중 전 서울변회 인권이사가 공개한 5년 전 삼성전자 법무팀의 항의서한. 오영중 변호사 페이스북 갈무리
삼성전자가 5년 전 ‘반도체 직업병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변호사 단체에 항의서한을 보내 “보도자료를 철회하라”고 요구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서울지방변호사회(서울변회) 전 인권이사 오영중 변호사는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2012년 삼성전자 법무팀에서 서울변회에 보내온 항의서한을 공개했다. 서울변회는 2012년 2월8일 서울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 기자실에서 회견을 갖고 삼성전자 등 반도체 직업병 사태를 유발한 사업장의 사과와 산재 소송 항소 취하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반도체 사업장의 작업공정에서 벤젠과 포름알데히드 등 발암물질이 나온다는 사실이 공공 연구기관을 통해 처음 발표된 직후였다. 오 변호사는 서울변회 인권이사로서 성명 발표에 함께 참가했다.
오 변호사는 “삼성전자가 성명 발표 당일 서울변회에 항의방문을 하고, 항의서한을 보내와 보도자료 철회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오 변호사가 공개한 삼성전자 법무팀의 항의서한을 보면, 삼성전자 쪽은 “서울변회는 삼성전자에 일체의 확인도 하지 않고 인체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아니하는 극미량의 벤젠, 포름알데히드, 전리방사선으로 인해 백혈병이 발생한 것처럼 단정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삼성전자와 소속 임직원들도 서울변회에서 추구하는 ‘국민의 인권을 수호’하는 대상인 ‘국민’이며, 소속 변호사들 역시 서울변회에서 권익을 옹호해줘야 하는 ‘회원’”이라고도 주장했다.
삼성전자 쪽은 또 ‘서울변회가 삼성전자의 신인도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취지로 보도자료 철회를 요구했다. 삼성전자 쪽은 항의서한에서 “삼성전자는 반도체 산업에 있어서 기술적 측면으로나 제조 환경에 있어서 세계 일류의 선도기업임을 자부하며 임직원의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 서울변회의 보도자료로 인해 일반 국민은 물론 서울변회 회원들로 하여금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삼성전자와 소속 임직원의 대외 신인도 및 명예에 막심한 악영향이 초래될 것이 분명하다”며 “보도자료를 즉각 철회하여 줄 것을 요청한다”고 했다. 하지만 서울변회는 보도자료를 철회하거나 사과성명을 발표하지 않았다.
오 변호사는 “삼성전자로서는 성명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자체적으로 보도자료를 내면 되는 일이었다. 삼성은 그렇게 할 능력도 갖고 있다. 그런데도 이례적으로 항의서한을 보내는 데 이어 항의방문까지 해서 ‘삼성의 힘’을 보여주고 실력행사를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고 했다. 오 변호사는 이어 “삼성이 회사를 위해 일하다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서도 일가의 경영권을 위해서는 몇백억원을 썼다는 것이 밝혀져 고민 끝에 뒤늦게 항의서한을 공개한다”며 공개 취지를 밝혔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