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청와대 쪽이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대해 사과를 요구해 박근혜 대통령 대면조사를 둘러싼 특검과 청와대의 힘겨루기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대면조사 일정 논의 내용이 일부 언론에 유출됐다는 이유로 청와대는 대면조사를 보이콧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뇌물수수 피의자 신분인 박 대통령이 절차상 사소한 문제를 꼬투리 잡아 특검 수사에 비협조적 태도로 일관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와 특검팀의 말을 종합하면, 특검팀은 1차 수사기간이 2월28일 만료되는 점을 고려해 오는 10일 안에는 박 대통령 대면조사를 반드시 끝내야 한다는 태도였다. 특검팀은 ‘2월10일 전 대면조사’라는 실리를 챙기는 대신 조사 방식은 박 대통령 쪽 일부 요구를 수용하는 선에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박 대통령 쪽은 대면조사 장소를 청와대로 하되 조사가 끝난 뒤 조사 사실을 공개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한 언론이 지난 7일 대면조사 시점을 2월9일로 못박아 보도하면서 막바지에 다다른 양쪽의 협상에 균열이 생기게 됐다. 청와대가 피의사실 유출이나 인권침해까지 들먹이며 특검팀의 박 대통령 대면조사 자체에 딴지를 걸고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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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특검팀에 사과까지 요구한 것은 박 대통령 대면조사를 위한 양쪽의 협상이 쉽게 풀리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특검팀은 사과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피의사실과 대면조사 협상 내용 유출을 인정하는 셈이기 때문에 ‘수용 불가’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가 대면조사 협상 재개의 전제조건으로 특검팀의 사과 문제를 계속 걸고넘어지면 대면조사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청와대가 지난해 말 검찰 특별수사본부 수사 때처럼 박 대통령 대면조사를 아예 거부하거나 특검팀 1차 수사 만료 시점까지 조사 일정을 최대한 늦추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1월4일 2차 대국민 사과를 통해 “검찰 조사를 받겠다”고 한 뒤 줄곧 대면조사에 응할 듯한 시늉을 하다가, 11월20일 특수본이 박 대통령을 피의자 신분으로 정식 입건하자 수사의 공정성을 문제삼으며 끝내 대면조사를 거부했다.
박 대통령의 이런 태도는 대통령 신분인 점을 고려하더라도 통상적인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 수준을 넘어선 특혜를 요구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특검팀은 최순실(61·구속기소)씨의 ‘국정농단’의 주범을 박 대통령으로 보고 있다. 수사 결과 대기업한테서 뇌물을 받고, 국가기밀을 유출한데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실행을 주도한 주범이 박 대통령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피의사실공표’, ‘수사의 공정성’ 등을 내세워 수개월 동안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려는 검찰과 특검 수사를 외면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각종 혐의에 연루된 종범 성격의 피의자들은 예외 없이 구속되거나 재판에 넘겨졌다.
특검팀이 박 대통령 대면조사를 성사시키기 위해 박 대통령 쪽에 너무 저자세로 끌려다닌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검팀은 수사 과정을 언론에 알릴 수 있도록 한 특검법에 따라 그동안 박 대통령 혐의와 관련된 피의자들을 조사할 때 대부분 공개를 원칙으로 했고 기소할 경우 공소장도 공개해왔다. 하지만 유독 박 대통령 대면조사에 대해서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특히 지난 7일에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김기춘(78·구속기소) 전 비서실장과 조윤선(51·구속기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기소하면서 박 대통령의 피의사실이 담겨 있다는 이유를 들어 차별적으로 공소장을 공개하지 않아 형평성 논란을 키웠다.
검찰 관계자는 “박 대통령 대면조사가 공개된 이상 비공개 룰은 깨진 것이다. 특검팀이 박 대통령 대면조사의 형식적 문제에 집착하다가 자칫 명분과 실리를 둘 다 놓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필 서영지 기자 fermata@hani.co.kr[디스팩트 시즌3#39_노골적 시간끌기, 박근혜 탄핵 중간 점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