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지법 영동지원 “성별 정체성, 성기형성 수술 필수 아냐”
성기수술 안 한 ‘여→남’ 성전환자는 2013년에 성별정정 허가
성기수술 안 한 ‘여→남’ 성전환자는 2013년에 성별정정 허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이가 여성 성기를 만드는 수술을 받지 않았더라도 성별정정이 가능하다는 국내 첫 결정이 나왔다.
청주지방법원 영동지원(재판장 신진화)은 신체 외부에 성기를 만드는 수술을 받지 않은 성전환자 ㄱ씨에 대해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정정하는 것을 허가한다고 16일 밝혔다.
재판부는 “여성으로서 성별 정체성을 확인하는 데 있어서 성기 형성 수술은 필수적이지 않다. 성기 형성 수술이 의료기술상의 한계 때문에 후유증의 위험이 크며 신청인과 같이 외부 성기 수술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성전환자들이 많이 있다”고 결정 이유를 밝혔다. 또 “수술을 받지 않은 성전환자는 사고나 질병으로 생식기를 잃은 경우와 다르지 않다. 성별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공동체 내 다른 구성원들이 혐오감·불편함 등을 느낀다’는 주장에 대해 법원은 “다양성 존중과 소수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민주 사회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라며 “외부 성기 형성 수술을 받지 않은 성전환자가 어려움을 겪는다 하더라도 국가가 이에 개입할 의무는 없다”고 밝혔다.
2013년 3월 서울서부지법은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한 이가 남성 성기 형성 수술을 받지 않아도 성별정정이 가능하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엔 ‘성기 형성 수술이 덜 어렵다’는 이유로 성별정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번 소송은 천주교인권위원회의 ‘유현석 공익소송 기금’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다. 천주교인권위원회 유현석 공익소송 기금은 지난 2004년 세상을 떠난 인권변호사 고 유현석 변호사를 기리기 위해 유족이 출연한 기부금을 바탕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기금은 공익소송사건을 선정해 소송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변론을 맡은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은 논평을 내고 “성전환자의 인권 증진에 큰 획을 그은 중요한 판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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