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사건’ 재판에서 2014년 청와대 비선실세 의혹을 제기한 ‘정윤회 문건’ 파동 이후 최순실(61)씨에게 정부·청와대 문건을 보내는 것을 그만두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는 진술이 공개됐다. 두 사람 사이 메신저 역할을 한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은 휴대전화 3대를 사용해 최씨와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김세윤) 심리로 16일 열린 정 전 비서관에 대한 형사재판에서 정 전 비서관이 검찰 조사에서 “2014년 말경 소위 ‘정윤회 문건’ 파동 이후 최씨로부터 자문을 자문받는 것을 그만두는 게 좋겠다고 박 대통령에게 건의했고, 박 대통령이 그만두라고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 전 비서관은 박 대통령 지시에 따라 최씨와 이메일 계정을 공유하며 최씨에게 공무상 비밀문건 47건을 포함해 청와대 문서 200여건을 넘긴 메신저로 지목된다. 정 전 비서관은 “‘정윤회 문건 파동’ 이후 최씨에게 문건을 한번도 안 보냈느냐”는 질문에는 답변을 거부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이 공개한 정 전 비서관의 진술조서를 보면, 박 대통령은 ‘최씨에게 (문건 관련) 도움을 받으라고 지시했고 좋은 얘기 있으면 반영하라’고 명시적으로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정 전 비서관은 또 “최씨의 ‘말씀자료’ 관여는 18대 대선부터였는데, 대통령의 개인적인 일까지 믿고 맡길 사람이 최씨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대선 준비 및 이후까지도 최씨의 의견을 들어보라고 하신 것”이라고 답했다.
정 전 비서관은 또 “최씨에게 거의 매일 (문건을) 보내고, 매일 통화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어 최씨와 연락할 때 이용한 휴대폰은 3대라고도 밝혔다. 정 전 비서관은 “최씨가 국정에 관여했느냐”는 질문에는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는데, 의사결정에 대해 최씨 의견이 반영되는 게 있었던 건 사실”이라며 “언론보도를 보다가 (국정 관련) 비판 기사가 있으면 최씨에게 자초지종을 물은 뒤 최씨 의견을 박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박 대통령이 최씨 의견이 타당하다고 판단하면 반영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밝혀졌다.
정 전 비서관은 지난달 18일 공판에서 “박 대통령이 문건이 건건이 보내라고 지시한 건 아니”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 전 비서관의 진술은 박 대통령이 공무상 비밀문건을 민간인인 최씨에게 직접 넘기고 도움을 받으라는 지시를 명확히 내린 정황을 뒷받침한다. 또 박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대국민담화에서 “청와대 보좌체계가 완비된 이후 최씨의 의견을 묻는 것을 그만뒀다”고 밝힌 것도 거짓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현소은 허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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