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부·춘천지법, 법원장 결정 관행 깨고 판사들 의견 수렴
‘대법원장→법원장→판사 수직구조’ 대신 사법행정 투명성 취지
‘대법원장→법원장→판사 수직구조’ 대신 사법행정 투명성 취지
지난 15일 오후 5시. 서울동부지법 회의실에 소속 법관 40여명이 모였다. 법관 정기인사를 닷새 앞두고 ‘사무분담’을 논의하는 판사회의를 연 것이다. 영장이나 형사·민사사건 재판장 등을 정하는 ‘사무분담’은 ‘사건배당’과 함께 재판의 공정성을 판단하는 최우선 잣대다. 사무분담은 각급 법원장이 전권을 가지는데, 법원장 인사권은 대법원장이 갖는 ‘수직 구조’여서 일선 판사들의 의견이 사무분담에 반영되기는 어렵다.
동부지법 판사들은 ‘사무분담표 가안’을 판사회의 전날 미리 받아봤다. “민사합의부가 예년보다 하나 줄었으니 배석판사 4명이 담당할 협의이혼 의사확인 사건은 단독판사들이 맡는 게 어떨까요?” 업무량을 감안해 간단한 사건은 단독판사들이 나눠맡자는 제안이 나오자 새로 업무를 담당할 10여명의 단독판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판사회의 의장인 법원장이 이를 반영해 ‘2017년도 사무분담표’를 확정했다. 사무분담이 확정되고 한달 뒤에나 소집됐던 지난해 판사회의에서는 볼 수 없던 광경이었다고 한다.
서울동부지법(법원장 이승영)은 올해 인사부터 사무분담 확정에 앞서 판사회의 심의를 거치기로 결정했다고 20일 밝혔다. 법원 내규에도 명시해 법원장이 바뀌어도 원칙이 흔들리지 않도록 했다. 춘천지법(법원장 김명수)도 지난 14일 판사회의 의견을 수렴해 민사항소부 증가에 따른 업무량 변화를 사무분담에 반영했다.
각급 법원의 판사회의는 해마다 정기인사 뒤인 3~4월께 열리기 때문에 이미 법원장이 정한 사무분담을 추인하는 데 그쳐왔다. 올해 일부 법원에서 이런 관행을 깨는 작은 실험을 시작했다. 법원조직법에 명시된 판사회의를 활성화해 상향식 사법행정을 시도한다는 의미다. 서울동부지법 관계자는 16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아직 단독·배석판사나 합의부장 배정 등 큰 틀은 대법원 예규를 따르지만 일부 사법행정은 판사회의에 맡겨 투명성을 높이자는 취지”라고 밝혔다. 판사회의에 참석한 한 단독판사는 “회의에서 사건배당에 대한 의견도 활발하게 나왔다. 앞으로 일방향적인 사법행정에 판사들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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