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2월20일 오후 서울 대치동 특검사무실로 들어서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최순실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결정적 순간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수사 단서를 건네며 ‘복덩이’ 구실을 톡톡히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구속된 상태에서 추가 조사를 받기 위해 특검 사무실에 대기하고 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먼저 다가가 ‘부회장님’ 하며 인사를 건넨 것은 수사팀 내 유명한 일화다.
장씨는 특검 수사 초기부터 ‘제2의 태블릿피씨’ 등 결정적 증거 확보에 도움을 줬다. 그동안 최씨 쪽은 <제이티비씨>가 보도한 태블릿 피씨가 조작됐다고 주장해 왔다. 장씨는 특검 수사과정에서 지난해 10월 독일 도피 중이던 최씨의 부탁을 받고 급하게 싼 최씨의 짐 속에 태블릿피씨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민간 인사 개입’ 단서를 제공한 것도 장씨였다. 특검은 “최씨가 민정수석실에서 보낸 인사 파일을 검토하는 걸 봤다. 이 인사 파일을 사진으로 찍어둔 적 있다”는 장씨의 진술을 토대로 그의 컴퓨터를 조사한 뒤 이를 확보했다. 이 파일에는 민정수석실에서 민영화된 케이티앤지(KT&G) 사장 후보들을 검증한 자료들이 들어 있었다.
장씨는 기억력도 좋은 편이었다. 장씨는 휴대전화 숫자판을 기억하는 식으로 박근혜 대통령 휴대전화 끝자리를 ‘420X'라고 기억해 냈다. 특검은 이를 토대로 박 대통령이 최씨와 차명 전화로 지난해 4월부터 6개월간 570여회 통화한 사실을 밝혀냈다. 또 최씨가 미얀마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에 참여하는 회사의 지분을 15% 차명으로 받아 이익을 취하려고 했다고 폭로했다. 장씨가 당시 지분 관련 계약서를 작성한 공증사무실 위치를 정확히 기억해낸 덕분에 밝혀낼 수 있었다.
수사팀은 장씨를 ‘특별 관리’하며 각별하게 챙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검사는 장씨에게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을 건넸고, 장씨는 먹던 아이스크림을 냉장고에 넣어두며 “내일 먹겠다”고 스스럼없이 얘기했다. 또 ‘염치없는 부탁’이라면서 해맑은 표정으로 도넛이 먹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동계스포츠영재센터를 실질적으로 운영했던 장씨는 삼성의 지원과정을 구체적으로 진술하는 등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런 장씨가 특검 사무실에서 만난 이 부회장에게 먼저 다가가 아는 체를 했고, 이 부회장 역시 흔쾌히 장씨의 인사를 받아줬다고 한다. 장씨는 검사들에게 “조윤선 전 장관 등은 돈이 많아 변호사들이 매일 오랫동안 접견을 한다. 나는 돈이 없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으니, 특검에 자주 불러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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