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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명의를 팔라”…‘검은 유혹’에 빠지는 벼랑끝 청년들

등록 2017-03-03 09:21수정 2017-03-03 09:30

위기의 아이들은 이름을 판다

생활 어려운 10~20대들에 접근
대포통장·대포폰 ‘명의차용’ 범죄
“초범이라 기소유예로 끝날 거야”
“휴대전화 개통하면 30만원 주겠다”
범죄에 노출되고 빚의 수렁 빠져
김정명(21·가명)씨는 벼랑 끝에 서 있었다.

새엄마는 학대를 일삼았다. 2013년 학교를 자퇴하고 집을 나왔다. 한달치 방값은 내주겠다던 아버지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집세 40만원과 생활비를 오롯이 벌어야 했다. 17살이었다. 하루에 12~13시간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2년을 버텼다. 아버지 빚 1천만원도 대신 갚았다. 2016년 김씨의 통장은 텅 비었다. 월세는 3개월치가 밀렸다. ‘대출’을 수소문하다 알게 된 ‘아는 형’이 김씨에게 ‘이름을 팔라’고 했다.

“네 통장을 팔면 돈이 돼. 경찰한테 걸려도 초범이기 때문에 기소유예 정도로 끝날 거야.” 김씨의 통장에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돈 190만원이 입금됐다. ‘아는 형’은 순식간에 돈을 인출해 갔고 김씨의 통장엔 10만원만 남았다. 그리고 김씨는 경찰 수사 선상에 올랐다.

‘위기 청소년’들은 이름을 판다. 통장이나 휴대전화를 만들어 범죄조직에 넘겼다가 전과를 갖거나 빚을 지곤 한다. 이제 막 성인이 된 후기청소년(만 19~24살)들이 자유롭게 통장이나 휴대전화를 개설할 수 있는 나이가 됐다는 점을 ‘명의 차용’ 범죄조직이 악용하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부천에 사는 최윤형(21·가명)씨는 거리에서 만난 ‘아는 형’에게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돈 쉽게 버는 법을 알려준다’는 그 형은 “핸드폰을 개통해서 넘겨주면 20만~30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부모와 떨어져 쉼터를 전전하던 최씨에게 현금 30만원은 큰돈이었다.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최씨는 형의 제안에 끌려 휴대전화를 개통했다. 이후 쓰지도 않는 휴대전화 요금 고지서를 다달이 받게 됐다. 약정으로 인한 위약금·기계값을 한꺼번에 갚을 수 없어 쉽게 핸드폰을 해지할 수도 없다. 휴대전화 수집·판매 브로커들은 2~4대의 휴대전화를 개통하게 한 뒤 대포폰 중개업자 등에게 넘긴다. 통장이 개당 10만~30만원에 판매된다면, 휴대전화는 대당 20만~90만원에 거래된다.

위기 청소년을 보호하는 사단법인 ‘세상을 품은 아이들’의 명성진 목사는 “거리를 떠도는 청소년의 약 20~30%가 그런 범죄에 노출됐다고 보면 된다. 부모와 멀어지고 생활비는 빠듯한 상황에서 쉽게 돈을 융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보니 뒷일을 생각 못 하고 범죄에 연루되거나 빚을 지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돈을 받고 통장이나 휴대전화를 넘겨준 청소년들은 ‘부채의 수렁’에 빠지게 된다. 핸드폰 통화료, 소액결제 금액 등이 서류상 소유자에게 부과되기 때문이다.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돼 벌금형을 받거나 피해보상이 청구돼 채무로 이어지기도 한다.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가 지난해 부채를 갖고 있는 후기청소년 10명을 조사해보니 이들 중 6명이 통장이나 휴대전화를 넘겼다가 적게는 200만원에서 많게는 2170만원의 부채를 지고 있었다.

이효준(23·가명)씨는 휴대전화로 인한 빚 때문에 자살까지 시도했다. 동생이 이씨 명의로 대당 70만원을 받고 휴대전화 두 대를 개통해 업자에게 넘겼다. 이씨의 손에 없는 휴대전화의 기계값과 요금 고지서가 날아들었고 순식간에 300만원의 빚이 쌓였다. 아르바이트로 50만원을 갚았지만 생활비 부족에 빚 독촉 전화까지 받다가 결국 스트레스로 손목을 그었다. 법률지원센터의 김광민 변호사는 “갓 성인이 된 청소년들이 부모의 조력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생활비를 마련하려다 이런 범죄에 빠져든다. 어린 나이에 계속되는 빚 독촉, 부족한 생활비,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 등으로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정명씨는 현재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아는 형’의 설명대로 기소유예 처분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두렵다.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려 해도 정상적인 은행 거래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안 업주들이 채용을 꺼리기 때문이다. 대포통장 명의자는 ‘금융질서 문란 행위자’로 신용정보원에 등재되기 때문에 모든 은행에 1년간 예금계좌를 개설할 수 없다. 그는 현재 인천의 한 청소년쉼터에서 살고 있다. “잠깐 벼랑에서 멀어진 줄 알았는데, 사실은 낭떠러지에서 떨어진 거였어요.”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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