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가 지난 2월15일 사회보장위원회가 입주한 국민연금공단 건물 외벽에 스프레이로 자신의 이름을 쓴 뒤 사회보장기본법 개정 등을 요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귀하께서는 15일 ‘나, 다니엘 블레이크. 한국복지의 현재이다' 행사 과정에서 우리 공단 건물 외벽에 훼손을 가했습니다. 원상회복 비용을 전문업체에 의뢰한 바, 금 271만7천원이 소요된다는 회신을 받았습니다.”
지난달 28일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공동대표는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지난달 15일 시위 과정에서 공단 건물을 훼손한 데 대해 271여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공문을 받았다. 박경석 대표는 사회보장위원회가 있는 건물 외벽에 빨간 스프레이로 “나, 박경석. 개가 아니라 인간이다”라고 적었다. 한국판 ‘나, 다니엘 블레이크’ 선언이었다.
지난해말 개봉했던 영국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주인공은 심장질환에 걸려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질병 수당을 신청한다. 그러나 수당은 지급되지 않고 온갖 치욕만 당한다. 그는 고용센터 건물 벽에 스프레이로 “나, 다니엘 블레이크, 굶어 죽기 전에 질병 수당 항고 날짜를 잡아달라고 요구한다. 망할 전화연결음도 바꿔!”라고 쓴다.
박 대표는 손해배상 청구를 예상했다면서 다만 “장애등급 판정, 활동보조서비스 인정점수 판정 등 장애인 복지 문제에 대해선 자신의 책임이 아닌 듯 타자화하는 태도가 놀라웠다”고 말했다. “공단에 요구한 바에 대해서는 어떤 답신도 않고 건물 훼손 사실만 가지고 공문을 보내왔다는 게….”
지난달 28일 국민연금공단이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 쪽으로 보내온 공문. 사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전장연은 그날 국민연금공단에 장애인 복지 서비스를 확대하고,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협의·조정제도 개정을 주 내용으로 하는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015년 정부 사회보장위원회(위원장 국무총리)가 ‘복지재정 효율화 추진 방안’의 일환으로 전국 지자체에 사회보장제도를 전면 재검토하라고 요구해, 일부 지자체의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가 중단·축소된 바 있다. 국민연금공단은 손해배상금을 3월15일까지 입금하라고 알려온 상태다. 완납되지 않으면 소송 등 법적 조치에 들어가겠다고 경고했다. 박 대표는 “이렇게 해서라도 장애인들의 현실을 알려야죠. 국가가 만든 제도, 이를 집행하는 기관들에 의해 장애인들이 얼마나 많은 인간적인 수모를 겪고 있는지….”라고 말했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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