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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교사는 페북 정치기사에 의견만 써도 선거사범?

등록 2017-03-05 10:14수정 2017-03-05 13:45

[토요판] 뉴스분석 왜?
선생님이 ‘선거사범’ 되는 과정
정치인을 비판하거나 지지하는 기사를 페이스북에 공유하면서 한마디 덧붙인다. “구구절절 옳은 소리군. 이런 자는 배지를 못 달게 해야 돼.” 만약 이 페이스북의 주인이 교사라면, 그는 법정에 서야 한다. 법에서 금지하는 ‘선거운동’을 했기 때문이다. 무슨 이따위 법이 다 있을까 싶지만 2017년 대한민국에서 실제 벌어지는 일이다.

* 표를 누르면 확대됩니다.

국립 초등학교 교사 박동국씨는 지난해 4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①~⑥(사진)을 올렸다. 순천 시민들이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의 주민소환을 추진한다는 기사에 “자전거쇼, 눈물쇼… 쇼는 그냥 쇼”라는 말을 덧붙이거나(①), 다른 사용자들이 올린, 선거가 끝나면 국민 위에 군림하는 새누리당 의원들을 비판하는 사진·그림을 공유하거나(②③⑤⑥), “새누리당이 총선에 승리하면 혁신학교·혁신교육지구·전교조 죽이기 등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글(④)을 올렸다.

한국 공직선거법은 초중고 교사의 ‘선거운동’을 금지한다. 선거가 끝난 뒤 박씨는 기소됐고 1심 판결이 지난해 12월 서울북부지법에서 나왔다. ①~⑥ 중 ④만 유죄, 나머지는 무죄였다. 벌금 50만원(박동국 교사 항소). ④가 유죄, 즉 선거운동인 이유를 재판부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글을 직접 써 4600명에 이르는 ㄱ씨 페북 친구들이 읽을 수 있게 했고, ‘새누리당 후보자들이 많이 당선되면 각종 정책들이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심각한 국가적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읽은 선거인이라면, ㄱ씨에게 새누리당 후보자들의 낙선을 도모한다는 목적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박씨의 ‘페친’들이 ④를 보고 ‘박동국씨는 새누리당 후보들이 떨어지기를 바라는구나, 그런 운동을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말이다. 언뜻 보면 맞는 말 같다. 그러면 ①이나 ③은 어떨까? ④를 본 뒤 받은 ‘영향’과는 다른 영향을 얻게 될까? 만약 항소심 재판부가 1심 재판부와 똑같은 이유를 들어 무죄 부분마저 유죄로 뒤집는다면? 변호인과 박씨는 어떻게 반론할 수 있을까.

기사·의견 공유한 초중고 교사들
‘선거운동'이라며 기소…20명 재판중
모호한 기준에 유무죄 오락가락
“검찰·법원의 판단 근거 파악 안돼”

헌재 ‘정치=불온한 것’ 인식 불변
‘공익' 근거로 표현의 자유 제약
보수단체·검찰은 고발·기소 짝짜꿍
“아무것도 말하지 말라는 메시지”

ⓐ와 ⓑ는 사립 초등학교 교사 송윤관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이다. 각각 오세훈 전 서울시장(ⓐ), 이혜훈 전 국회의원(ⓑ)과 관련한 기사와 그들을 비판하는 글을 덧붙인 내용이었다. 그런데 검찰이 기소한 송씨의 범죄 혐의 사실엔 ⓐ만 포함됐다. ⓑ는 ‘혐의 없음’으로 결론났다. 검찰이 보기에 ⓐ는 선거운동이지만 ⓑ는 선거운동이 아니라는 말이다.

ⓐ와 같은 게시물 11개를 올린 혐의로 기소된 그에겐 지난달 17일 서울중앙지법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법원은 “△송씨가 올린 글은 기사나 또는 이미 언론에서 보도된 내용이고 △평소에도 정치인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밝혀온 것으로 볼 때 개인적·정치적 의사 표현에 불과하며 △정당의 정책이나 비례대표 후보자의 자질에 대한 비판이지 특정 후보자의 낙선을 도모할 목적이 아닌 점” 등을 무죄 이유로 들었다.

정치는 불온한가?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보장된다.”(헌법 31조 4항)

국공립 교사는 물론이고 사립학교 교사까지 정치활동과 단체활동을 금지하는 근거가 된 헌법 조항이다. 이를 근거로 초중고 교사는 공직선거법에선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자’이며, 정당법에선 ‘당원이 될 수 없는 자’로 정치적 기본권을 제한당하고 있다. 국가공무원법과 사립학교법에 따라 정치행위나 집단행위를 할 수도 없다. 정당 가입과 선거운동이 허용되는 대학교수들과 비교해서도 차별을 받고 있다.

1999년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교사의 노동기본권이 보장되기 시작했지만 정치기본권의 보장은 여러 논의에도 불구하고 전혀 진전되지 않고 있다. 그 과정에서 2009년 광우병 시국선언, 2014년 세월호 시국선언에 참여했던 교사들에게 유죄가 선고됐고, 징계가 뒤따랐다.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이 상황을 헌법재판소는 ‘공익’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끌여들여 정당화한다. 교사라는 이유로 시민이라면 누려야 할 정당 가입과 활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정당법이 헌법에 반한다며 낸 헌법소원에 헌재가 내린 결론이다.

“△교육은 이상적이고 비권력적인 것인 데 반해 정치는 현실적이고 권력적이라 교육과 정치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고 △감수성과 모방성이 왕성한 초중교 학생에게 교사가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에 △국민의 교육기본권을 보장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공익을 우선해야 한다.”(2001헌마710)

지난달 14일 열린 토론회(‘교사의 정치적 기본권 보장과 교육의 중립성’)에서 이현 전교조 참교육연구소장은 헌재의 논리를 “정치를 특정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불온하고 위험한 행위로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회란 여러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곳이고 공익이란 결국 이 이해관계들의 상호 작용, 즉 정치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해야 실현가능한데, 헌재는 이러한 정치를 공정성과 객관성을 파괴하는 행위”로 본다는 설명이다.

정영태 인하대 교수는 2010년 발표한 논문(‘초·중등학교 교원의 정치적 자유권 제한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논거와 문제점’)에서 “교원의 정치적 자유는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도 필요하고 정치적 공직자와 고위관료를 견제하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며 헌법재판소의 입장 변화를 요구했다.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한다는 헌법 조항이 정치적 자유를 ‘제한’하는 근거가 되는 현실에 대해선 몇몇 헌법재판관도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박한철(퇴임), 김이수, 강일원, 서기석 헌법재판관은 정당법의 공무원 가입 금지 조항을 심판하면서 반대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헌법 31조 4항의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교육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지 교원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며 헌법에 위반된다고 밝혔다. 대학교수와 차별을 두고 있는 현행법에 대해서도 “정치활동의 자유가 대학에서의 연구나 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유익하다면 초중등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로 보는 게 합리적”이라며 평등 원칙에 위배된다고 밝혔다.(2011헌바42)

보수단체가 밀고 검찰이 이끈다

‘정치는 불온한 것이며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는 이에 관여해선 안 된다’는 헌재의 해석에, ‘선거운동’을 애매하고 포괄적으로 정의한 조항(공직선거법 58조)까지 더해져 교사들은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누르거나 게시물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법정에 서고 있다. 이 과정엔 보수(를 자처하는) 단체와 검찰이 큰 역할을 한다.

애국시민연합은 지난해 4월 총선이 끝난 뒤 현직 교사들을 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했다. 이들이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이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는 주장이었다. 애국시민연합에서 이 고발을 주도한 이는 김상진 사이버감시단장이다. 그는 세월호 참사를 전후해 유가족과 추모자들에 대한 부정적 여론 조성을 주동한 것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고발을 접수한 선관위는 경고와 준수 촉구 등 가벼운 처분만 내리고 수사 의뢰 없이 사건을 종결했다. 그러자 애국시민연합은 이 고발장을 고스란히 들고 검찰을 찾아갔다. 검찰은 이렇게 고발된 90여명의 교사 중 20명을 기소하기에 이른다.

재판에 넘겨진 교사 20명은 현재 1심이 선고됐거나 진행 중이다. 무죄가 선고된 경우도 있지만 형이 확정되면 직을 잃는 벌금 100만원 이상을 받은 교사도 있다. 유죄이되 벌금 100만원 미만인 교사들도 교육청이나 학교 차원의 징계를 받게 된다.

‘건전한 상식인’이면 알 수 있다?

문제는 비슷한 사례에 대해 유죄와 무죄를 판단하는 법원의 기준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공직선거법은 선거운동을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라고 정의한다. 그런데 또 “단순한 의견개진 및 의사표시”는 선거운동이 아니라고 한다. 박동국, 송윤관씨의 경우에서 보듯 당사자인 교사는 물론이고 법조인인 변호사도 선거운동과 단순한 의사표시를 구별하기 어렵다.

교사들을 변호하는 민주노총 법률원 강영구 변호사는 “무죄 선고된 판결을 보면 페이스북의 일상성을 인정해 선거운동으로 판단하지 않는 등 ‘희망적’인 내용이 많다. 그런데 모두가 (직업 선거운동원이 아닌) 교사들이고 게시물의 성격에도 차이가 없는데, 유무죄로 나뉘는 이유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법원의 유무죄 판단 기준은 물론이고, 검찰이 기소와 불기소를 결정하는 기준 역시 모호하긴 마찬가지다. 실제 법원들이 유죄 근거로 제시한 내용들도 제각각이다. “과격한 표현을 사용했다”거나 특정 정치인에 대해 이미 알려진 사실을 나열했다는 점이 유죄의 이유로 제시되기도 했다. ‘선거운동 여부는 (작성자가 아닌) 게시물을 본 사람이 선거운동의 목적을 인식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대법원 판례(2015도11812)를 근거로 제시하지만 이 판례 역시 애매하다.

페이스북이라는 매체에 대한 판사들의 이해도 부족하다. 유죄 판결문들엔 “게시물이 ‘전체공개’돼 있고 수천명에 이르는 페이스북 친구들이 게시글을 읽을 수 있게 한 점” 등이 주요 근거로 제시됐다. 그런데 나의 페이스북 담벼락에 친구가 아닌 누군가의 ‘전체공개’ 게시물이 보여지는 경우는 드물다. (친구공개나 비공개가 아닌) 전체공개를 했다는 사실만으로 ‘특정한 의도가 더 크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이 등록된 친구 모두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법을 만들고 죄를 물어 처벌하려면 금지되는 행위가 무엇인지 사전에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죄형법정주의 명확성의 원칙) 공직선거법의 ‘선거운동’ 조항은 이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헌법재판소 심판대에 올랐다. 그때마다 헌재의 답은 한결같았다.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감정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구분할 수 있다.”

2008년 8월 ‘공직선거법의 선거운동 조항이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합헌 결정을 내릴 땐 조대현, 김종대, 목영준 재판관이 반대의견을 냈다.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라는 정의만으로는 선거운동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조대현 재판관은 여기에 덧붙여 “선거 공정성을 해칠지 모른다는 염려를 내세워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유명무실하게 할 정도로 제한하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다”는 보충의견을 냈다.

가만히 있으라

선관위와 검찰에서 조사를 받고 법정에까지 서게 된 교사들이 위축되는 건 당연한 결과다. 박동국씨는 “항소하고 끝까지 싸울 생각이지만 현행법이 그러하다는 사실까지 부인하긴 어렵다. 페이스북에 글을 쓸 때 여러번 고심하게 된다. 나나 동료 교사들에겐 결국 ‘선거철엔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송윤관씨는 “몇몇 게시물은 선관위에서 조사를 받는 도중에 (지우라기에) 지우기도 했다. 한동안 페이스북에 아무것도 쓰지 않고 공유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학생들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쳐야 할 교사들이, “민주정치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만든 공직선거법과 정당법에 의해,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적 표현의 자유(헌법 제21조 제1항)를 제한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2017년엔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다. 애국시민연합을 비롯한 단체들은 이번 선거에서도 교사들의 ‘선거운동’을 감시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공익의 대표자’를 자임하는 공안검사들은 이번에도 선거 관리자 역할을 자처할 것이다. 선생님들이 위태롭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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