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 등 두산그룹 총수 형제 4명이 1995년부터 10년 간 횡령한 회삿돈 규모는 326억원 가량인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확인됐다.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는 10일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과 박용오 전 명예회장 등 총수 일가 형제 4명을 포함, 두산계열사 전ㆍ현직 대표 14명을 특경가법상 횡령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고 100여일간 진행해온 수사를 일단락지었다.
그러나 검찰은 애초 형사 처벌이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됐던 박용성 전 회장의 장남 박진원 두산 인프라코어 상무은 단순한 자금관리 역할만 했던 것으로 드러나 막판에 기소 대상에서 제외했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박용성 전 회장과 박용오 전 명예회장, 박용만 전 부회장 등 3형제는 협력업체에 외주 공사비를 과다지급한 뒤 그 차액을 반환받는 방법 등으로 1995년부터 최근까지 두산산업개발(옛 두산건설)과 위장계열사인 동현엔지니어링 등을 통해 모두 286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 형제 중 6남인 박용욱 이생그룹 회장은 1998년부터 작년 말까지 협력업체와 허위계약을 맺고 물품대금을 지급한 뒤 이를 회수하는 방법 등으로 계열사 ㈜넵스의 자금 39억8천여만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 형제는 비자금을 생활비로 나눠쓰거나 두산건설 유산증자에 필요한 사주 일가의 대출금에 대한 이자대금(139억여원) 등으로 사용했고, 박용욱 회장은 본인이별도로 조성한 비자금 39억8천여만원을 사찰기부금과 생활비 등으로 썼다고 검찰은 밝혔다.
이들 형제는 또 두산산업개발의 공사 진행률을 허위로 높여 매출금액을 과대 계상하는 방법으로 2천838억원 가량을 분식회계하는 데 관여한 혐의도 받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박용만 전 부회장이 미국 위스콘신주 소재 식물성장촉진제 제조회사인 뉴트라팍에 투자한다는 명목으로 800억원 가량의 재산을 국외도피했다는 진정 내용에 대해서는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결론냈다.
검찰은 뉴트라팍의 회계장부와 은행거래내역 및 수표사용내역, 미국 회계법인의 감사보고서 등을 종합 검토한 결과, 두산그룹 대주주와 계열사들이 2000년 1월부터 작년 12월 말까지 투자한 미화 6천260만달러는 대부분 연구개발비와 컨설팅비, 일반관리비 등으로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또 박용성 전 회장이 생맥주 체인점인 ㈜태맥을 통해 45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ㆍ횡령했다는 진정 내용도 인정하지 않는 등 나머지 진정 및 고발 내용도 대부분 무혐의 처분했다.
고웅석 기자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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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산비리' 황희철 차장검사 문답
`두산비리' 수사를 지휘한 서울중앙지검 황희철 1차장 검사는 10일 "박용성ㆍ박용오 전 회장 등 14명을 불구속 기소한 것은 전적으로 수사팀 의견을 따른 것"이라며 "향후 공소 유지 과정에서 중형이 선고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공소시효가 지났지만 박용곤 회장의 재직 당시 480억여원의 비자금 조성사실도 확인했으며 `가족 생활비' 등 기소대상이 된 비자금의 용처도 규명됐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황 차장 검사와 일문일답.
-- 두산산업개발 관련 비자금 액수가 정확히 얼마인가.
▲230억원은 순수하게 비자금으로 조성된 거고 29억원은 회사 자금을 횡령한 부분이므로 순수하게 비자금만 따지만 230억원이다.
-- 비자금 조성 당시 부회장이었던 박용성 전 회장을 주범으로 볼 수 있나.
▲박용성씨는 당시 직위와 상관없이 재무문제에 많이 관여했으므로 주도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박용성ㆍ박용오씨는 서로 상대방이 주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 사용처 중 규명 안된 부분은 어느 정도인가.
▲비자금 중 대주주 일가한테 건네진 생활비는 사용처가 모두 밝혀졌다. 대주주에게 준 생활비가 가장 많고 가족 세금이나 공과금 납부한 부분도 있다.
-- 두산 일가로 들어간 326억은 어떻게 쓰였나.
▲이자대납으로 139억이 쓰였다. 가족 생활비 명목으로 107억이 전달됐는데 매월 가족에게 600만∼700만원 정도 주어졌고 매년 5월 별도로 8천만원이 지급됐다. 세금으로 37억원이 쓰였고 회장단 잡비가 3억원이며 40억원 정도는 회사 경비였다.
-- 선대에서도 비자금 조성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박용곤 회장 당시의 비자금 조성도 확인을 했다. 1990년대 초반 건설경기 좋았을 당시로 480억원 규모다.
-- 돈 사용처는.
▲일부 개인 횡령액도 있고 계열사 지원, 대주주 주식 대금이나 현장 전도금 등으로 사용했는데 공소시효가 많이 지나 구체적으로 밝히기 어렵다.
-- 생활비 외에 사찰 시주금으로도 쓰였나.
▲초파일 등 행사 때 여러 차례 시주한 액수가 15억원이다.
-- 박용성ㆍ박용오씨가 동시에 비자금 조성을 지시할 순 없지 않나.
▲둘이서 상의하고 얼마를 조성하자고 하면 두산산업개발은 박용오 회장측이, 다른 위장계열사 등은 박용성 회장이 주로 지시했다.
-- 가족에게 들어온 온 돈도 액수가 크기 때문에 정치권 등에 흘러갈 수도 있는데 수사를 더 진행하지 않았나.
▲1천187개의 계좌를 추적했지만 이상한 돈 흐름이 확인된 바 없다.
-- 가족들은 받은 돈이 비자금으로 조성된 점을 알고 있었나.
▲몰랐다고 진술하고 있고 반박할 증거도 없다.
-- 수사결과 피의자들은 불구속 기소되기엔 죄질이 아주 나쁜데.
▲공소유지 과정에서 중형이 선고되도록 노력하겠다.
-- `불구속'은 수사팀의 의견이 어느 정도 반영됐나.
▲전적으로 수사팀 의견이다. 구속ㆍ불구속 모두 설득력이 있고 타당하다고 생각돼 끝까지 고민한 뒤 결론낸 것이다.
-- 박진원씨가 아무런 이유 없이 돈을 전달하지 않았을 텐데 공범이 아니냐.
▲박 상무는 가족 공동자금 등을 관리하는 금고지기 역할을 했다. 합법적 자금도 관리했기 때문에 매번 돈이 무슨 명목인지 가리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아버지의 심부름꾼에 불과한 아들을 기소할 필요가 있겠나.
-- 생활비 분배기준은 누가 언제 만들었나.
▲1996∼1997년부터 정상적인 배당금 및 `가족 생활비'로 나온 것이 계기가 됐던 것 같다. 선친이 장남에게는 1.5, 차남들에게는 1, 딸에게는 0.5씩 분배하라고 유언을 남겼다더라.
-- 일경개발 채무 129억원 부당인수는 오너 지시 없었던 걸로 돼 있는데.
▲전략기획본부에서 구조조정 차원에서 한 것이고 오너가 지시했다는 증거가 없었다. 더 수사하면 일경그룹에 대한 부당지원 문제가 나오는데 시효가 지났다.
안 희 기자 prayerahn@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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