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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일제 통감부 떨게한 담살이 의병장 ‘안담산’ 아시나요?”

등록 2017-03-09 20:14수정 2017-03-09 21:31

[짬] ‘안규홍 의병장’ 추모사업 증손자 안병진씨
담산 안규홍 의병장의 증손자인 안병진씨가 지난 4일 전남 보성 득량면 예당리 ‘파청승첩비’ 앞에서 <담산일기> 증보판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담산 안규홍 의병장의 증손자인 안병진씨가 지난 4일 전남 보성 득량면 예당리 ‘파청승첩비’ 앞에서 <담산일기> 증보판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담살이’라는 말은 ‘머슴’을 일컫는 전라도 사투리이다. 전남 보성에는 ‘담살이 의병장’ 이야기가 구전되고 있다. 하지만 그의 구체적인 행적은 잊혀져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최근 보성군이 새로 증보 번역한 <담산실기>엔 안규홍(1879~1910) 의병장이 이끌던 의병부대의 항일 투쟁 과정 등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남의 집 고용살이를 했던 그를 사람들은 담산(擔産)으로 불렀고, 혹자는 송나라대의 담암과 문산에 비유해 ‘담산’(澹山)으로 칭했다. 봉건적 신분제가 여전했던 구한말에 머슴 출신이었던 그는 어떻게 농민·포수·군인 뿐 아니라 유생까지 합세한 부대의 의병장이 됐을까?

지난 4일 오후 보성군 득량면 예당리 ‘파청승첩비’ 앞에서 안규홍 의병장의 증손자 병진(71·사진)씨를 만났다.

전남 보성일대 ‘머슴’ 출신 의병대장
1908~10년 ‘3대대첩’ 거두고 사형
보성군, 활약기록 ‘담산실기’ 증보판

“통감부도 ‘거괴’ 경계할정도 용맹”
지난해 순국 106돌 처음 추모행사
“문중·학계·지역 뜻모아 선양했으면”

파청승첩비가 선 곳은 안 의병장이 거병해 처음 일본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던 곳이다. 1908년 2월 비둘기 고개라고 불리던 이 곳에 복병을 매복시켜 일본군 2개 부대를 괴멸시켰다. ‘담산실기’는 54년 안 의병장의 후손과 지역 유림들이 장군과 그의 부장·참모 등의 이야기를 한문으로 기록한 책이다. 23년 대구에서 장군의 유해를 반장해 올 무렵 쓴 전기 등 기록과 해방 이후 집필한 순의(殉義)사실, 묘표, 승첩비 내용과 참모들의 행적이 2권에 걸쳐 실려 있다. 공동 번역자 김은수 광주대 명예교수와 안동교 조선대 한국고전번역센터 책임연구원(조선대 연구교수)은 “안규홍 장군 후손이 쓴 편지 등 원고 6편을 추가했고 한글세대가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풀어썼다”고 서문에 밝혔다.

담산은 보성군 보성읍 우산리 택촌에서 태어나 10살 무렵부터 머슴살이를 하며 홀어머니를 봉양했다. 체구는 작았지만 의협심이 남달랐고, 강직했다. 정유재란 때 의병장 문강공 안방준(1579~1654년)의 10대손이다. 그는 1907년 군대해산으로 망해가는 나라의 처지에 분노해 농민들을 규합했다. 척사파 유생 의병장의 부대와 달리 농민·포수 등이 중심이 된 평민 의병부대였다. 그래서인지 거병 초기 일부 유생들은 “함께 일하는 것을 수치로 생각해” 거절했다. 이에 담산은 1907년 12월 그는 포수 출신인 강성인의 의병 부대에 합류했다. 그러나 강성인 부대는 주민들의 재산을 빼앗는 등 민폐가 심했다. ‘담산실기’엔 그가 강성인을 처단해 이듬해 2월 보성 문덕면 동소산 아래에서 의병장으로 추대됐다고 전한다.

담산 부대는 1908~09년 1년 6개월 남짓 동안 보성·순천을 중심으로 하는 전남 중동부 지역에서 26회에 걸친 전투에서 일본 순사와 군인, 일진회원 등 200여 명을 사살했다. 첫 승리인 파청대첩을 비롯, 1908년 8월의 진산대첩, 1909년 3월 원봉대첩을 이 부대의 3대 대첩으로 꼽는다. 안 의병장은 1909년 9월부터 일제가 남한대토벌작전을 벌여 거미줄처럼 포위망을 좁혀오자 훗날을 기약하고 의병을 해산했다. 하지만 그는 보성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밀고로 체포됐다. “그때 보성지서에서 큰증조부님께 ‘손도장을 찍으면 풀어주겠다’고 회유했데요. 그런데 담산께서 ‘뭣이 잘못한 게 있다고 손도장을 찍어요?’라며 역정을 냈다고 하더라구요.”

머슴(담살이) 출신 의병장으로 용맹을 떨친 안규홍(뒷줄 오른쪽 다섯째) 대장을 비롯 1910년 대구교도소에서 사형을 당한 의병장들의 마지막 모습. 사진 보성군청 제공
머슴(담살이) 출신 의병장으로 용맹을 떨친 안규홍(뒷줄 오른쪽 다섯째) 대장을 비롯 1910년 대구교도소에서 사형을 당한 의병장들의 마지막 모습. 사진 보성군청 제공
담산은 광주형무소를 거쳐 대구형무소로 이감돼 이듬해 1910년 6월22일 교수형을 당했다. “그때 가족들이 대구로 주검을 거두러 갔는데 마침 주막집 주인이 의병대장들 교수형을 집행한 사람을 소개해줘 묻힌 장소와 수형번호만 확인해 돌로 표시해두고 돌아왔대요. 그뒤 23년에 탈골 이장을 하러 갈 때는 지역에서 부조금도 모아 줬다고 해요.” 큰조카가 고인의 양자로 들어가 담산의 제사를 모시고 있다. 병진씨는 “결혼은 하셨지만 손이 없었다. 소실 자손이라고 빠져 있던 집안 족보에는 35년에야 담산 이름이 올라갔다”고 말했다.

‘담산실기’ 번역본 맨 앞엔 ‘이 책을 조국을 위해 헌신한 안규홍 의병장과 여러 부장들, 그리고 무명의 의병들에게 바친다’라고 적혀 있다. 안 의병장 부대는 부장·참모장·서기·군수장 등의 군대 편제를 갖췄다. 염재보·송기휴·이관회·나창운·송경희·장재모·손덕호·정기찬 등이 주요 직책을 맡았다. ‘담산실기’엔 서울에서 온 ‘해산 군인’ 출신 오주일이 합세한 사실도 나온다. 유생 출신 의병장 임창모는 1909년 4월 안 대장 부대에 합류해 부장을 맡았다가 부자가 함께 죽었다. ‘포장 장계진은 포수로 육군 7중대와의 싸움에서 공로를 세웠다. 해산 뒤 무등산으로 행군하다가 적군에게 포위되어 탄환을 맞고 전사했다. 부인도 군량을 조달하는 일로 몰래 활약했다. 주검이 갈기갈기 찢겼다’는 기록도 나온다.

담산은 통감부에서 ‘(의병장)심남일과 더불어 안규홍을 가장 용맹하고 출몰이 기민한 거괴(巨魁)’라고 평가했을 정도로 명성을 떨쳤다. 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하지만 안 대장에 대한 역사적 조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지난해 6월 처음으로 파청승첩비 앞에서 안씨 문중 일가와 향교 관계자 등 30여 명이 모여 순국 106돌 추모식을 처음 열었을 정도다.

안동교 교수는 “영남의 신돌석 의병장과 어깨를 나란히 할만큼 유격전술에 능통한 장군이었는데, 사후에 학술 연구와 추모·선양 사업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뒤처져 있다”고 말했다. 증손자 병진씨는 “밥 묵고 살기 바빠 그동안 신경을 많이 못썼다. 문중 뿐 아니라 학계와 관계 등에서도 관심을 가져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보성/글·사진 정대하 기자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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