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선고가 있던 10일, 세월호 유가족들은 헌재 인근에서 탄핵 심판 소식을 기다렸다.
세월호 희생자 김유민양 아버지 김영오씨는 박 전 대통령의 파면이 결정되는 순간의 헌재 앞 풍경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사진 속 김씨는 두 손을 들고 환호하는가 하면, 시민과 포옹하기도 했다.
김씨는 이날 페이스북에 “유민아, 보고 있니? 유민아 박근혜가 탄핵 되었단다. 이 순간을 사랑하는 우리 유민이를 안고 기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빠와 국민들이 해냈다”고 운을 뗐다. 이어 “박근혜가 탄핵되는 순간 그동안 서럽고 힘겨웠던 것들이 하나씩 하나씩 뇌리를 스쳐고 지나갑니다”라며 “고통스러웠던 광화문에서의 단식. 나를 비하하고 조롱하던 일베와 보수단체, 허위 사실을 폄훼하여 아빠 자격논란을 일삼았던 언론들. 가슴을 후벼파는 여당의원들의 막말과 ‘유가족충’, ‘종북 빨갱이’, ‘시체팔이’’’라고 비난했던 이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끝으로 김씨는 “이제 위안이 됩니다. 이 모든 서러움이 이제 눈물이 되어 흐릅니다. 국민 여러분!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국민 여러분이 우리를 믿고 함께 촛불을 밝혀 주셔서 박근혜 탄핵이 가능했던 일입니다”라면서 국민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단원고 희생자인 유예은양의 아버지 유경근씨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늘은 예은이가 태어난 지 7087일. 예은이가 별이 된지 1060일. 그리고 예은이가 왜 별이 되었는지 알아내기 1일”이라고 적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선고 이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 있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미수습자 분향소’에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분향소엔 한 시민이 올려둔 ‘박근혜 파면’ 뉴스가 실린 호외 신문과 ‘박근혜 탄핵,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라고 적힌 꽃바구니가 놓였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정춘희(55)씨는 “시민들과 기쁨을 나누고 싶었는데, 아직 차가운 바다 속에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분향소에 안들리고 갈 수가 없었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경기도 용인에서 온 송진구(43)씨는 희생자들의 사진을 바라보며 “좋은 나라 만들게요. 국민들이 다 죄인이에요”라고 연신 말하면서 고개를 떨궜다.
헌법재판소는 이날, 재판관 전원 일치로 박 전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지만 세월호 사고 구조와 관련한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 등은 탄핵 사유로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이진성·김이수 헌재 재판관이 세월호 참사 관련 소추사유에 대한 보충의견을 통해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두 재판관은 “박 대통령이 국가공무원법 상의 성실의무를 위반했지만 의식적으로 직무를 포기했다고 보기 어려워 파면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면서도 “국가 최고지도자가 국가위기 상황에서 직무를 불성실하게 수행하여도 무방하다는 인식이 반복되어서는 안 되므로 박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위반을 지적한다”고 말했다.
이에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4.16연대)는 ‘세월호 7시간 제외시킨 것은 상식 밖’이라는 제목의 논평을 내어 “헌재가 박근혜의 세월호 참사 당일의 직무유기를 탄핵사유로 인용하지 않은 것은 상식 밖의 일로서 매우 유감스럽다”면서 “헌재의 판단이 세월호 참사 진실규명을 위한 조사와 수사를 회피하거나 위축시키는 데 악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박수진 기자 jjinp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