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26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5차 촛불집회를 마친 시민들이 청와대 쪽으로 행진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촛불이 주인공이었다.
2016년 10월29일 처음 등장해 탄핵소추안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된 10일까지 꼬박 133일. 19번의 촛불집회, 연인원 1587만명. 232만명이 든 촛불은 탄핵에 미적대던 국회를 움직여 지난해 12월9일 탄핵소추안을 가결했고, 청와대와 재계·학계를 가리지 않고 칼날을 겨눈 특검의 든든한 뒷배이기도 했다. 마침내 헌재가 민의를 따라 탄핵의 마침표를 찍었다. ‘비정상의 정상화’의 시작과 끝엔 촛불이 있었다.
최순실 국정농단·정유라 부정입학…
작년 10월29일 3만명 첫 촛불집회
11월12일 100만명 ‘6·10 이후 최대’
11월26일 청와대 200m앞서 “퇴진”
국회 압박해 탄핵안 가결 이끌어내
박대통령 대리인쪽·탄기국 막말에도
광화문 지키며 “특검 힘내라” 지지
세월호 진상규명·정경유착 해소 등
‘적폐’가 청산된 새 대한민국 꿈꿔
■ 언론, 촛불에 불붙이다 ‘촛불 정국’은 연이은 언론 보도로 불붙기 시작했다. 지난해 여름 <티브이조선>의 미르재단 의혹 보도에 이어 지난해 9월20일 <한겨레>는 미르·케이스포츠재단 불법모금 사태의 한가운데 ‘최순실’이 있다는 점을 최초 보도했다. 최씨의 딸 정유라씨 대학 입학 및 학사관리 과정에서의 부정 의혹도 첫 보도했다. 이어 10월24일 <제이티비시>(JTBC)가 ‘태블릿 피시’를 입수, 보도했다. 최씨가 박근혜 대통령 연설문 수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보도였다. 이튿날 포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박근혜 탄핵’, ‘하야’ 등의 단어가 올랐다.
토요일인 10월29일, 시민들은 광화문으로 나와 “박근혜는 퇴진하라”를 외치기 시작했다. ‘정유라의 입시 부정’과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분개했다. 당시 집회를 마련한 민중총궐기투쟁본부는 ‘2000~3000명만 와도 많다’고 생각했지만 시민 3만명(주최 쪽 추산)이 모였다. 첫 촛불집회의 이름은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시민 촛불’이었다.
규모를 예상치 못했던 경찰은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당시 현장에서 경비를 지휘했던 경찰 관계자는 “세종로네거리에서 시민들에게 밀려 저지선이 무너지던 순간이 가장 아찔했다. 서둘러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에 저지선을 재설치해 겨우 막아냈다”고 회고했다. ‘이명박근혜’ 정권 내내 철통처럼 광장을 장악하던 경찰이 시민들에게 무너지던 이 장면은 촛불 초기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당시 <한겨레>와 만난 서울 관악구에 사는 이은미(60)씨는 “나는 박근혜 대통령을 응원하는 사람이었는데 후회를 넘어 배신감을 느낀다. 아이들한테 미안하다. 꼬박꼬박 세금 내고 있는데, 그 세금으로 비선 실세란 분이 자기 이익을 위해 썼다는 것 아니냐”며 ‘박근혜 퇴진’이라고 쓰인 손팻말을 흔들었다. 한 주 뒤인 11월5일 열린 2차 촛불집회엔 ‘10배’가 뛰어 전국 곳곳에 30만명이 모였다. “집회는 생전 처음”이라던 시민들조차 “박근혜는 물러나라” 8음절을 또박또박 외쳤다.
■ 평화 촛불, 국회의원 234명 움직이다 훗날 역사책에 2016년 11~12월은 ‘촛불 혁명’으로 기록될 수 있을까. 11월12일 3차 촛불집회엔 100만명(전국 106만명)이 모였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최대 인파였다. 경찰이 집계한 순간 최대 인원도 26만명으로 최대 규모였다. 광화문 일대에선 휴대전화가 제때 터지지 않았다. 최소한의 상식을 기대한 시민들은 박 대통령 ‘자진 하야’를 바라며, 노래 ‘아리랑 목동’을 개사한 ‘하야가’를 수없이 불렀다.
다음 주에도 96만명이 모였다.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던 김진태 당시 새누리당 의원의 발언이 말 그대로 ‘기름을 부었다’. 경찰의 차벽은 시민들이 붙인 ‘꽃벽 스티커’로 뒤덮였다. ‘평화 촛불집회’는 그렇게 탄핵 시계를 앞당기고 있었다. 11월19일 무대에 선 가수 전인권이 말했다. “세계에서 가장 폼나는 촛불시위를 합시다.”
5차 촛불집회가 열린 11월26일 저녁 8시 서울 광화문광장. 광장에 모인 190만명이 1분간 촛불을 껐다 켰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저항의 1분’이었다. 전국 곳곳엔 비와 눈이 내렸지만 시민들은 ‘하야 눈’이 내린다며 서로를 격려했다. 평화 집회가 이어지면서 경찰의 금지통보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잇따라 청와대 코앞 행진을 허용했다. 이날 시민들은 처음으로 청와대 200m 앞까지 다가가 “대통령 퇴진”을 외쳤다.
사흘이 지난 11월29일, 박 대통령은 3차 대국민 담화를 했다. “모든 걸 국회에 맡기겠다”고 했다. 당시 새누리당은 ‘4월 퇴진’ 당론을 채택했다. 여권발 교란작전에 야당은 12월2일 탄핵안 의결에 실패했다.
12월3일. 국민들은 정치권을 향해 직접적인 경고를 보냈다. 전국 곳곳에 232만명이 모였다. 전무후무한 숫자였다. 한목소리였다. “국민 믿고 탄핵하라.” 매주 촛불집회의 장을 마련하는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의 안진걸 공동대변인은 “국민들은 저희가 말씀드리지 않아도 언제 힘을 모아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며 “저희는 그 목소리를 그대로 담아내는 일만 했다”고 말했다. 촛불에 놀란 새누리당 비박계는 4일 “탄핵 표결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12월9일, 국회는 의원 234명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탄핵안을 가결했다.
■ 자신감 얻은 촛불…‘대한민국 적폐 청산’ 주권자의 민심을 대의하는 국회를 본 시민들은 자신감을 얻었다. ‘대통령 퇴진’ 이후를 상상했다. 세월호 진상규명, 재벌개혁, 언론개혁, 정경유착 해소, 18살 투표권…. 광장의 목소리가 점점 다양해졌다. 탄핵안이 가결된 다음 주부터 퇴진행동의 집회 제목엔 ‘박근혜 퇴진’만이 아닌 ‘적폐 청산’이 등장했다.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는 목소리가 광장을 메웠다.
헌재 결정을 가만히 지켜볼 법도 한데 시민들은 꾸준히 광장으로 나왔다. 지난해 12월17일 강원 춘천 집회에 참석한 한상균(26)씨는 “현실의 법은 권력의 도구로 쓰이기 쉽다. 법에만 의존해선 안 되고, 탄핵심판과 특검 조사만 기다려서도 안 된다. 우리가 직접 광장에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크리스마스이브에도 ‘하야 크리스마스’를 외치며 70만명이 광장에 나왔다. 퇴진행동은 2016년의 마지막날 열린 ‘송박영신’(박 대통령을 보내고 새 대한민국을 맞는다) 집회에서 연인원 촛불 참가 시민이 1000만명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이날 광화문에 나온 양현우(59)씨는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이 최순실 같은 괴물을 만들었다. 2017년은 돈보다 생명, 청렴 같은 가치를 중시하는 사회로 나갈 중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단원고 생존자 학생들이 참사 3년 만에 공개석상에서 입을 열 수 있었던 데에도 촛불의 힘이 컸다. ‘세월호 참사 1000일’을 하루 앞둔 지난 1월7일 11차 촛불집회에서 대학생이 된 이들이 무대에 섰다. 이들은 “저희가 세월호 이후 시민들 앞에 서기까지 3년이 걸렸다”며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시민들 덕분에 제대로 된 진상규명 기회가 생겨 감사하다”고 말했다.
■ 촛불이 지켜준 특검 지난해 12월21일 현판식을 기점으로 수사를 개시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지난 2월28일 수사가 종료될 때까지 숨가쁘게 달려왔다. 특검팀이 동력을 잃지 않도록 ‘후방 지원’한 것도 촛불이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등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될 때, 청와대가 특검의 압수수색을 거부했을 때, 박 대통령이 ‘일정 유출’을 이유로 대면조사를 받지 않겠다며 ‘몽니’를 부렸을 때, 시민들은 “가만히 있지 못하겠다”며 광장에 나왔다.
수사 기간 동안 촛불 시민들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팀 사무실로 응원의 화환과 꽃바구니를 보냈다. 건물 외벽엔 ‘특검 힘내라’는 포스트잇이 붙었다. 최순실씨가 특검에 출두하며 기자들 앞에서 “억울하다”고 외치자 특검 사무실 청소노동자 임애순씨가 “염병하네”라고 맞받았다. 생중계로 방송되며 화제가 된 임씨는 지난 2월4일 집회 무대에 올라 특검팀을 향해 “밤낮으로 너무 수고가 많다. 이번 기회에 대한민국에 정의가 살아나도록 공명정대하게 수사해주셨으면 한다”며 ‘무한 신뢰’를 보냈다. 수사 마지막날 17명을 추가 기소하면서, 모두 30명을 재판에 넘긴 특검팀은 “(수사를 모두 마무리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입장을 밝혔지만 국민들은 박수를 보냈다. 지난 3일 박영수 특검은 수사 종료 기자간담회에서 “국민적 지지, 여망 분위기가 없었더라면 하기 어려운 수사”였다고 소회를 밝혔다. 박 특검은 자택 앞 집회 등으로 신변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 막판 인내심테스트 촛불 시민들의 인내심을 시험하듯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막말’을 일삼았다. 김평우·서석구 변호사는 주말이면 탄핵반대 집회 무대에 올라 특검과 헌재와 국회를 맹비난했다. 3·1절 탄핵반대 집회에서 김평우 변호사는 촛불 시민들을 향해서도 “어둠이 내리면 복면을 쓰고 촛불 횃불을 들고 나타나 붉은 기 흔들며 박 대통령과 대한민국 저주하는 어둠의 자식들”이라며 “저들은 단 한 사람도 대한민국의 국기 태극기를 흔들지 않고 오직 붉은 기만 흔든다”며 ‘국민’이 아니라고까지 언급했다.
탄핵반대 집회를 주도하는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는 박 대통령의 대리인 쪽이 ‘막말’을 거듭할수록 탄핵 기각이나 각하의 명분을 얻은 듯 세를 불려왔다. ‘탄핵 기각’, ‘탄핵 무효’ 등을 오랫동안 외치던 탄기국 쪽은 지난 4일부터 ‘탄핵 각하’를 주장했다. 김평우 변호사가 “탄핵 기각은 탄핵이 사기라는 걸 몰랐을 때 하는 말”이라며 “여기에 속으면 안 된다”고 무대에서 언급한 뒤부터다. 헌법재판소에서도 고성을 지르는 등 돌출행동을 일삼은 대통령 대리인단에 대해 촛불집회에 나온 시민들은 “언급할 가치도 없다. 대통령이 저 정도 수준인가 의심된다”며 일관되게 탄핵을 요구했다.
지난 4일 19차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은 “박근혜 없는 3월이 진짜 봄”이라며 탄핵을 촉구했다. 지난가을부터 시작된 촛불은 추운 겨울을 지나 봄에 닿았다. 11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선 20차 촛불집회가 열린다. ‘진짜 봄’에 열리는 첫 집회다.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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