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일대에서 탄핵무효국민총궐기운동본부 주최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법치주의가 죽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아직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11일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판결 뒤 치러진 ‘1차 국민저항운동 태극기집회’는 전날 박근혜 전대통령의 파면을 ‘법치주의 사망’으로 규정했다. 무대 위에서는 ‘역사상 가장 완벽한 좌파정부 탄생’을 경고하며, 참여자들의 공포심을 자극했다. 집회 안에서는 신당(새누리당) 창당 움직임도 일었다. 언론, 국회에 이어 사법부와 헌법재판소까지 모든 제도권이 등을 돌린 상황에 대한 불안감은 “우리는 2등국민으로 모욕당했다”는 무대 위 김평우 변호사의 표현으로 정리됐다. 11일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친박단체 집회는 이전의 ‘○○차 탄핵반대 태극기 집회’에서 이름을 바꿔 ‘1차 국민저항운동 태극기 집회’라는 이름으로 열렸다. 상황의 변화를 반영해 구호도 ‘탄핵각하’에서 ‘탄핵무효’로 바꿔 외쳤다. 여전히 수많은 태극기가 펄력였지만 대통령 탄핵심판 직전 주말 집회에서 서울 남대문로와 서울광장 등을 가득메웠던 인파는 육안으로 보기에도 확연히 줄었다. 서울광장 안에서도 군데군데 빈공간이 눈에 띄었고 대한문 앞을 조금만 벗어나도 인파는 드문드문 해졌다.
전날 빚어진 극단적인 폭력사태에 대한 비판여론을 의식한 듯 집회 주최 쪽은 ‘폭력’과 ‘극단적인 선동’에 제동을 걸었다. 집회를 첫 연사로 오른 정광택 국민저항본부 공동대표는 “‘군 병력을 동원하라’느니 이런 극단적인 선동은 우리 집회와는 관련이 없다. 이상한 사람들이 끼어서 선동하고 쏙쏙 빠지고 있다. 우리는 그런 난동을 부리는 집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평우 박대통령측 변호사가 발언을 하는 사이 정광용 국민저항본부 대변인은 “휘발유통 들고 세월호 광장 쪽으로 가는 사람들 당장 멈춰요. 그러면 이쪽에서도 불길이 입니다. 경찰 막아줘요.”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장 곳곳에서는 분을 삭이지 못한 참여자들이 여전히 과격한 발언을 쏟아냈다. 몇몇 참여자들은 광화문 광장 쪽으로 태극기를 들고 가는 것을 경찰과 일부 다른 참여자들이 막자 “빨갱이들은 때려죽여도 불법 아니다” “대한민국국민이 왜 태극기를 들지 못하느냐”는 고성을 지르며 실랑이를 벌였다. 앞서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박성현 자유통일 유권자본부 집행위원장(뉴데일리 주필)을 비롯한 4명이 집회가 열린 대한문 근처에서 트럭위에 올라 휘발유와 소화기를 뿌리고, 이를 저지하려는 경찰을 막아 검거했다”고 밝혔다.
이날 집회에서는 극단적인 보수 세력을 다시 결집하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권영해 공동대표는 “아무리 광장에서 목이 터져라 외쳐도 제도권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며 “제도권에 우리가 원하는 정치가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집회장소로 들어서는 서울 지하철 2호선 시청역 입구 곳곳에는 ‘새누리당’ 준비위원회 입당원서를 받는 부스들이 차려졌다. 앞서 국민저항운동본부 쪽은 “‘새누리당’ 당명을 확보했고, 이를 바탕으로 창당을 준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평우 변호사는 무대에 올라 “국민여론이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때 20%, 이번 탄핵때는 제가 보기에 5대5 였는데 헌법재판관들은 8대0 판결을 했다. 국민의 평균 인식 수준에도 못미친다”며 “차기 정부는 입법부, 사법부, 언론 모두를 장악한 역사상 처음 등장할 완벽한 좌파정부가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물론 우리의 자녀들은 어떻게 되겠느냐”며 극단적인 보수층의 공포심을 자극했다. 이같은 상황이 “1987년 민주화 이후 전교조의 교육 등으로부터 오랜 기간 준비한 기획”이라는 논리도 폈다.
집회를 마치고 오후 4시께 시민들은 서울 중구 을지로를 거쳐 대한문으로 돌아오는 행진을 시작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11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일대에서 탄핵무효국민총궐기운동본부 주최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