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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보수와 진보, 누가 더 사과에 인색할까

등록 2017-03-13 09:40수정 2017-03-13 09:55

[곽노필의 미래창]
보수, 사과와 수용하는 것 전부 꺼려
계층적 사고에 젖어 있는 것이 한 원인
사과하면 힘을 잃어버린다고 생각
지난해 미 대선에서 클린턴이 5차례 사과를 하는 동안 트럼프는 한번도 사과하지 않았음을 자랑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지난해 미 대선에서 클린턴이 5차례 사과를 하는 동안 트럼프는 한번도 사과하지 않았음을 자랑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보수적인 사람들이 진보적인(리버럴) 사람들보다 사과에 더 인색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국 정치판을 들여다보는 데 시사하는 바가 있어 보인다.

호주 퀸즐랜드대의 매튜 혼지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최근 학술저널 <사회심리와 성격과학>에 발표한 논문에서, 그렇게 볼 수 있는 증거를 발견했다며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사과’는 매스미디어 시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사과는 과거엔 주로 한 개인이 다른 사람이나 소규모 그룹에 대해 사용했던 말이었으나, 오늘날엔 특정한 대외적 이미지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유명인사들이 즐겨 쓰는 메시지가 돼가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그러나 그 중에서도 사과를 더 잘하는 유형이 있다며, 리버럴한 정치인과 저명인사들이 보수적인 사람들보다 공개 사과를 더 잘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혼지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미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8개월에 걸쳐 5차례 사과를 하는 동안, 도널드 트럼프는 자신이 한번도 사과하지 않은 점을 자랑스러워 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두가지 실험을 통해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 첫번째 실험은 국제 설문조사다. 연구진은 7개국(칠레, 홍콩, 러시아, 페루, 호주, 중국, 미국)에 거주하는 2130명에게 ‘어떤 환경에서, 얼마나 기꺼이 사과할 용의가 있는지’를 물었다. 응답 내용을 분석한 결과, 자신이 보수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리버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보다 사과에 인색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보수적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사과에도 영향을 덜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보수적인 사람들은 어떤 범법 행위자가 사과를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그 사람을 용서할 가능성은 낮다는 걸 뜻한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사과를 하는 데도 인색하지만, 사과를 받아들이는 데도 인색하다는 얘기다.

계층적 사고가 인색한 사과의 한 원인으로 보인다. 한겨레 자료사진
계층적 사고가 인색한 사과의 한 원인으로 보인다. 한겨레 자료사진

두번째 실험은 자원자 65명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실험 참가자들은 인도인 38명, 미국인 27명이었다. 연구진은 이들에게 이웃이 휴가를 떠나 있는 동안 이웃집 잔디에 물을 뿌려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가정해보라고 주문했다. 그리곤 이들에게 이웃이 휴가에서 돌아왔을 때 상황이 어땠을지를 적으라고 요구했다. 연구진은 보수적인 사람들은 리버럴한 사람들보다 물 주는 일을 더 잘하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할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나왔다고 밝혔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 연구진은 분명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보수적인 사람들은 리버럴한 사람들보다 계층적 사고에 더 익숙하기 때문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주인-하인’ ‘연장자-연소자’ 같은 식으로 사람을 구분하는 계층적 사고에 익숙한 사람들은 자신이 사과를 할 경우 다른 사람에 대한 힘을 잃어버리는 것같은 느낌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고 연구진은 말했다.

이번 연구를 한국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사과에 인색한 정도로 보면, 한국 정치인들의 보수성향 지수는 세계 상위권에 들지도 모르겠다. 특히나 권력을 사유화한 죄로 파면당한 뒤에도 사과는커녕 사실상 불복 선언을 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태도는 그 중에서도 압권이라 할 만하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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