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공감협동조합 건축사사무소는 이달 초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 ‘후암주방’을 열었다. 4~6명이 요리할 수 있는 3평짜리 공간에 기본적인 조리기구와 소금·후추 등 양념을 갖췄다. 시간당 2000~4000원 정도의 비용만 내면 누구든지 후암주방을 이용할 수 있다. 도시공감협동조합 제공
5년째 자취를 하는 박범기(29·성북구)씨에게 ‘과일’은 거리가 먼 단어였다. 장을 볼 때면 대용량으로 포장돼 비싸게 팔리는 ‘신선식품류’에는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7.5㎏짜리 배 한 박스를 주문하고 다 먹지 못해 버린 적도 있었다. 고민 끝에 박씨는 3월 초 성북동에 사는 청년 1·2인 가구 4가구를 모아 과일 공동구매 모임 ‘과일 대모험’을 만들었다. 가구당 월 1만원을 걷어 한 달에 한 번 제철 과일을 구매해 나눈다. 과일 공급처도 믿을 수 있는 곳과 직거래한다. 박씨는 “끼니를 챙기는 데 바빠 과일이나 채소류를 챙겨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못 했다. 공동구매를 통해 그동안 먹지 못했던 과일이나 채소 등을 정기적으로 먹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1인 가구가 ‘신건강취약계층’으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청년 1인 가구를 중심으로 ‘건강하게 끼니를 챙겨 먹자’는 다양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최근 20대 직장인 및 대학생 45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혼자 식사를 하게 되면 ‘식사를 대충하게 된다’(35.8%), ‘간편식을 주로 먹게 된다’(19.2%) 등 응답자의 약 55%가 식사를 대충 때우는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문제를 겪고 있는 일부 20~30대 1인 가구는 머리를 맞대고 공동구매·공동 반찬 제작 등을 시도하고 있다.
직장인 박진영(34·양천구)씨도 1인 가구인 친구 4명과 ‘과일 공동구매 카톡방’을 운영하고 있다. 누군가 장을 보러 갈 때마다 ‘과일 공구(공동구매) 번개’를 열고 먹고 싶은 과일 하나씩 구매해 나눠 갖는 식이다. 박씨는 “딸기, 바나나를 사도 다 못 먹으니까 금방 물러버리기 일쑤였다. 공동구매로 1인당 1만원~1만5000원씩만 걷으면 혼자 먹기 적당한 양으로 과일 네 종류를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반찬 두레’를 시작한 1인 가구도 있다. 김지현(28·마포구)씨는 이달 초 인근에 사는 1인 가구끼리 모여 반찬을 만들었다. 반찬을 만들어놔도 한 번에 많은 양을 만들게 돼 금방 버리기 일쑤였다. 그렇게 ‘만들고 버리는 악순환’을 반복하다 지난 5일 비슷한 고민을 가진 친구들과 함께 장을 본 뒤 양념 불고기를 만들어 나눠 가졌다. 김씨는 “같이 음식을 만들다 보니 재료 구매 비용도 줄고 요리에 대한 부담도 덜했다. 비정기적으로라도 반찬 두레를 이어가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공용 주방’도 등장했다. 도시공감협동조합 건축사사무소는 이달 초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 ‘후암주방’을 열었다. 4~6명이 요리할 수 있는 3평짜리 공간에 기본적인 조리기구와 소금·후추 등 양념을 갖췄다. 시간당 2000원~4000원 정도의 비용만 내면 누구든지 후암주방을 이용할 수 있다. 도시공감협동조합의 이준형 실장은 “젊은 층이 주로 사는 원룸이나 셰어하우스 등은 주방 공간이 좁고 조리기구도 갖춰져 있지 않아 친구들을 초대해 한 끼 식사를 같이하는 것도 힘든 게 현실”이라며 “1인 가구가 저렴한 비용으로 요리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공간을 꾸몄다”고 말했다.
도시공감협동조합 건축사사무소는 이달 초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 ‘후암주방’을 열었다. 4~6명이 요리할 수 있는 3평짜리 공간에 기본적인 조리기구와 소금·후추 등 양념을 갖췄다. 시간당 2000원~4000원 정도의 비용만 내면 누구든지 후암주방을 이용할 수 있다. 도시공감협동조합 제공
고한솔 기자
so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