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 사상 첫 영장실질심사
9일전 검찰 출석 때보다 긴장된 표정
‘뇌물 인정하느냐’ 질문에 눈길도 안줘
박근혜 전 대통령이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첫 파면을 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 중 처음으로 구속 전 피의자심문을 받기 위해 30일 오전 10시19분 서울중앙지법에 도착했다. 지난 21일 검찰 조사를 받을 때보다 한껏 긴장된 표정이었다. 동생 박지만씨 부부가 일찍 삼성동 자택을 찾아 박 전 대통령을 만났고, 매제 신동욱씨도 자택 밖에서 박 전 대통령을 배웅했다.
오전 10시9분 서울 삼성동 자택을 떠난 박 전 대통령은 10분 만에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서관 주차장에 도착했다. 엉덩이까지 덮는 군청색 코트를 입은 박 전 대통령은 차에서 내려 한차례 양 옆에 선 경호원에 눈길을 준 뒤 청사로 걸음을 옮겼다. 손에 쇼핑용 종이가방을 하나씩 든 경호원 2명을 비롯해 10여명의 경호원이 대동했다. 그는 법원 뒷마당에 마련된 서관 출입문으로 들어서면서 높게 솟은 법원 청사 건물을 한 차례 올려다보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을 맞는 취재진을 발견한 뒤 우물거리듯 한 차례 입을 벌렸지만 끝내 아무 말도 내놓지 않았다. 취재진들은 “국민에게 어떤 점이 송구한가”, “뇌물 혐의 인정하느냐”, “세월호 인양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느냐”고 물었지만 답하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보안검색대를 손안내하는 청와대 경호원에게만 한 차례 눈길을 줬을 뿐, 취재진에겐 시선을 두지 않고 입을 굳게 다문 채 계단을 올라 321호 법정으로 향했다. 박 전 대통령이 차에서 내려 법정에 들어서기까지 걸린 시간은 60여초 남짓에 불과했다.
박 전 대통령이 통과한 4번 출입구 인근은 미리 법원이 발부한 비표를 가진 기자들만 들어올 수 있도록 통제됐다. 카메라기자와 취재기자 84명이 들어차 빽빽했다. 외신들도 취재경쟁을 벌였다. 일본 취재진들은 생중계를 하기도 했다. 4번 출입구 포토라인이 강하게 통제된 가운데, 박 전 대통령을 둘러싼 10여명의 청와대 경호원이 발로 방송장비를 건드려 기자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30일 오전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 삼성동 집을 나서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앞서 오전 10시4분 자택 차고에서 나온 검정색 에쿠스 승용차가 자택 앞 도로에 주차됐고, 5분 뒤인 10시9분 박 전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21일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갈 때보다 표정은 어두웠다. 이른 아침부터 현장을 지키고 있던 300여명의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박근혜’를 연호했다. 이들 중 일부가 박 전 대통령 일행 차량을 막으려 경찰을 밀치면서 한때 차량 통행이 중단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이 탑승한 승용차는 경찰과 경호인력의 경호를 받으며 봉은사~교보로터리~터미널사거리를 거쳐 서울중앙지검을 통해 서울중앙지법에 도착했다. 오전 10시15분께 박 전 대통령 동생 박지만씨 부부가 삼성동 자택을 떠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매제인 신동욱(49) 공화당 총재도 오전 일찍 자택 인근에 나타나 집 근처를 배회했다. 신씨는 “가족의 도리하고 싶어서 왔다. 아내는 집에서 조용히 기도 중이다. 대통령이 찾으면 오는 게 맞지만 아직 찾지 않으니…오고 싶어는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은 오전 10시부터 법원 근처에서 ‘박근혜를 구속하라’, ‘박근혜 구속은 국민의 명령이다’, ‘박근혜를 감옥으로’ 등의 손팻말을 든 채 ‘법원은 박근혜 구속영장 즉각 발부하라’는 제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은 오전 10시부터 법원 근처에서 ‘박근혜를 구속하라’, ‘박근혜 구속은 국민의 명령이다’, ‘박근혜를 감옥으로’ 등의 손팻말을 든 채 ‘법원은 박근혜 구속영장 즉각 발부하라’는 제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박수진 기자
자택 앞은 출발 2~3시간 전부터 지지자 300여명이 몰려 들어 혼잡했다. 이들은 “대통령님을 못 보내드린다” “영장을 기각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지지자들은 또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탄핵 무효, 영장 기각”을 연호하기도 했다. 확성기를 든 지지자들은 취재진을 향해서도 “언론에게 경고한다. 똑바로 보도하라. 더 이상 권력의 시녀가 되지 마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일교차가 커 아침은 추운 날씨여서 대체로 고령인 지지자들은 마스크, 장갑, 털모자 등으로 무장했고, 이들의 손에는 태극기와 성조기, ‘억지 탄핵, 원천 무효‘라고 적힌 피켓 등이 들려 있었다. 일부 지지자들은 지난 21일 박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간 날 아침처럼 길바닥에 드러누워 “우리가 죽더라도 대통령을 살려야한다”고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아이고 우리 대통령님”하며 울부짖는 이들도 있었다. 한 남성 지지자는 취재중인 사진기자에게 먹다 남은 커피를 뿌리다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전날 밤 자택 앞에 남아있던 지지자 100여명 중 상당수는 담요와 비닐을 두르고 자택 앞에서 밤을 지새웠다. 이들은 지난 27일 검찰이 박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을 청구 한 이후 이날까지 나흘째 24시간 집회를 이어오고 있다.
경찰은 전날 밤 철제 펜스로 폴리스라인을 설치하고 차량과 사람의 통행로를 확보했다. 그러나 이날 아침 지지자들이 수가 늘어나 이면도로를 점거하면서 차량 통행이 쉽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 자택 바로 옆 삼릉초등학교 학생들의 등교 시간인 이날 아침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지지자들 30여명은 학교 정문으로 몰려들기도 했다. 폴리스라인에 막혀 자택으로 가까이 갈 수 없게 되자 학교 안으로 들어가 자택과 거의 맞닿아 있는 삼릉초 후문으로 가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안규삼 삼릉초 교장이 정문 앞을 지키며 이들에게 “아이들 등교시간이니 다른 곳으로 이동해달라”고 지지자들에게 요청했다. 그러나 확성기를 든 한 지지자는 “교장선생님, 저희가 여기서 행패를 부립니까, 무얼 합니까. 왜 다른 데로 가라고 하십니까”라고 소리쳤다. 한 지지자가 “우리가 (학교 정문인) 여기로 올 필요가 없다. 학생들 등교시간에 이러면 안 되는 것 같다”고 말했으나 다른 지지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녹색어머니회의 한 어머니가 “아이들 등굣길입니다”라며 물러나달라고 요구하자 태극기를 든 50대 남성이 “한 나라 대통령이 구속될 판인데 학생이 중요하냐 이X아”라며 욕설을 했다. 뒤이어 지지자들이 “학교에서 공부 배우면 뭐하냐. 빨갱이 나라에서” “씨X, 이 땅을 너네가 샀냐?” 등 막말을 이어갔다. 등교하던 초등학생들은 욕설과 고성이 들리자 어깨를 움츠리고 얼굴을 찌푸리며 교문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강남구청 공무원들과 녹색어머니회 어머니들이 학생들의 손을 잡고 교문까지 동행하는 등 등교를 도왔다. 정문 앞에서 소동이 일자 경찰은 즉각 삼릉초 정문 앞 경비인력을 10여명으로 증원했다.
앞서 오전 9시30분, 서울중앙지법 정문은 경찰이 인간띠로 완전 차단해 법원 직원 및 모든 사람이 출입할 수 없었다. 재판 받으러 온 시민들은 물론 법원 근무하는 판사들도 정문으로 왔다가 출입을 포기하고 10여분 정도 떨어진 법원 동문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들 중 일부는 “대통령만 정문 이용하고 국민은 옆문으로 이용하라는 건가”라며 경찰에게 항의하기도 했다.
김규남 박수진 현소은 허재현 기자 3string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