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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캠퍼스 길냥이와 함께 살길 찾아요”

등록 2017-04-02 17:04수정 2017-04-03 16:34

20~30개 대학 학생들 돌봄 모임
후원금 모아 중성화수술·사료 제공
대학간 네트워크로 확산 움직임
“학교밖 사회에도 좋은 선례 될 것”
지난 3월21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 문과 캠퍼스 곳곳에 4.5㎏짜리 통덫 5개가 설치됐다. 고려대에 사는 길고양이를 포획해 중성화수술(TNR)을 하기 위해서다. 고려대 내 고양이들을 보살피는 학생단체 ‘고고쉼’(고려대 고양이 쉼터)은 통덫 안에 놓아둔 사료 냄새에 이끌려 온 고양이 ‘윌리’와 ‘산이’, ‘하잔이’ 등을 잡아 중성화수술을 했다. 고고쉼 김민기 대표는 “캠퍼스에는 학생만 살지 않는다. 어떤 동물에게는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며 “수시로 발정기가 찾아와 그냥 두면 금방 개체수가 늘어난다. 중성화수술을 통해 캠퍼스에서 학생과 고양이가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 캠퍼스에 터를 잡은 길고양이가 늘어나면서, ‘고양이 집사’를 자처하는 학생 단체들 활동도 활발해지고 있다. 서울과학기술대에 다니는 최윤선씨도 지난해 11월 ‘서고고’(서울과기대 고양이는 고맙다냥)를 만들었다. 거리 생활로 홀쭉해진 고양이가 눈에 밟힌 최씨는 매일 2ℓ짜리 페트병에 사료를 채워 다니며 먹이를 줬다. 그러다 4학년이 돼 취업이 눈앞에 다가오자 ‘내가 졸업하면 얘네들은 어떡하지. 졸업식 다음 날부터 기다릴 텐데…’라는 걱정이 들었다. 최씨와 비슷한 마음을 가진 학생 10명이 모여 만들어진 서고고는 현재 43명의 회원이 30여 마리의 고양이를 돌보고 있다.

학생들이 조직을 꾸려 학내 길고양이를 돌보기 시작한 것은 2015년께부터다. 그해 겨울 국민대 학생들이 학내 길고양이 쉼터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국민대 고양이 추어오’(‘추어오’는 유행하고 있는 ‘~애오’ 말투를 변용한 것으로 ‘추워요’라는 뜻)가 만들어졌다. 이후 고양이 돌봄 모임은 건국대, 고려대, 서울대, 삼육대, 중앙대 등 전국 20~30여개의 대학으로 퍼져나갔다. 각 대학 캠퍼스에는 적어도 10~50마리의 길고양이가 사는 것으로 추정된다.

학생 신분으로 고양이를 돌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정기적으로 매달 10만~30만원 정도의 사료비가 든다. 중성화수술에도 고양이 성별에 따라 10~40여만원 정도가 필요하다. 급식소·쉼터 제작에도 비용이 든다. 학생들은 후원금을 받거나 자체 제작한 배지나 가방 등을 팔아 비용을 충당하고 있다.

학생들은 길고양이와 인간이 공존하는 캠퍼스를 꿈꾼다. 지난해 6월 연세대 건물 광복관 인근에 사는 새끼고양이 4마리가 굶주림에 지쳐 울자 일부 학생들이 고양이 소리가 시끄럽다는 민원을 제기했다. 길고양이 처리 문제를 두고 갑론을박이 오갔고, 학생 7명이 나서서 ‘광복관냥이추어오’ 모임을 만들어 고양이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사료를 정기적으로 제공하고 중성화수술도 이뤄지자 고양이 울음소리는 잦아들었고 학생들 민원도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연냥심’(연세대 냥이는 심심해) 임지훈 대표는 “길고양이를 없애기보다는 길고양이에서 비롯한 문제를 없애는 방식을 통해 얼마든지 사람과 고양이의 공존이 가능하다”며 “하나의 작은 사회인 대학캠퍼스에서 인간과 고양이가 어울려 살아간다면 캠퍼스 밖 사회에도 좋은 선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길고양이 돌봄 모임은 대학 간 네트워크로 확산될 예정이다. 지난 3월 강원대, 건국대 등 8개 대학 모임과 동물보호단체 카라는 ‘대학 길고양이 돌봄 사업’ 협약을 맺었다. 카라는 각 대학 모임에 사료·쉼터 등을 제공하고 중성화수술 비용을 지원한다. 이들은 2018년 돌봄 동아리를 대학 간 네트워크로 확대할 예정이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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