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12일 새벽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귀가하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를 나서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검찰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들이댄 칼만은 유독 무뎠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주범’인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기소하는 성과를 낸 201일의 검찰 수사가 ‘마지막 퍼즐’인 우 전 수석을 넘어서지 못하며 빛이 바랬다. ‘박근혜 수사보다 우병우 수사가 검찰한테는 더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한 것이다.
검찰은 17일 박 전 대통령의 구속기소와 동시에 우 전 수석의 불구속기소 방침을 밝히며, 이번 ‘국정농단’ 수사를 모두 마무리하겠다는 뜻을 공식화했다. 법원이 지난 12일 “범죄성립을 다툴 여지가 있다”며 재청구된 우 전 수석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지 닷새 만이다. 법원이 영장심사 단계에서 범죄사실이 충분히 소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인데도, 검찰은 보강수사 없이 기소를 강행했다. 현 상태로는 재판에서 무죄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커 보인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대체적인 견해다.
제 식구와 관련해 한계를 명백하게 드러낸 이번 검찰 수사는 새 정부 출범 이후 본격화할 검찰개혁 논의 국면에서 두고두고 검찰 조직에 부담이 될 전망이다. 여론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우 전 수석과 직·간접으로 얽혀 있는 검찰 고위 간부들을 보호하기 위해 서둘러 ‘면죄부 기소’를 택했기 때문이다. 당장 김수남 검찰총장 등 수뇌부가 ‘1%의 간부들을 위해 조직 전체가 매도당하는 길을 택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반면 검찰은 이날 ‘부실수사’ 논란을 의식한 듯 “검찰이 명예를 걸고 죄가 있으면 엄벌하겠다는 각오로 수사에 임했다”며 수사결과 발표 70분 중 30여분을 우 전 수석 수사 관련 설명을 하는데 할애했다. 노승권 서울중앙지검 1차장 검사는 ‘우 전 수석의 개인비리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는 등 제기된 의혹을 적극 해명하며 “수사팀 검사들이 30명이 넘는다. 봐주고 하면 세상에 비밀이 있냐”며 “최선을 다해 수사했고, 이 점에 대해 자부할 수 있다. 우 전 수석 관련해서 오해나 곡해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검찰의 이런 설명에도 우 전 수석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잠잠해질지는 불투명하다. 검찰 스스로도 부실한 초기 대처가 내내 수사의 발목을 잡아온 점만큼은 강하게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만약 수사 대상이 (우 전 수석이 아닌) 경찰청 간부였어도 그렇게 늑장 수사했겠느냐”며 “수사의 기본 매뉴얼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우 전 수석 수사를 빼면 검찰의 이번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수사’는 비교적 긍정 평가를 받을 만 하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70일이라는 짧은 기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30명을 기소할 수 있었던 데는 1기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기초공사’가 잘 돼 있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당시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구성 이틀만인 지난해 10월29일 정호성 전 비서관의 휴대전화를 압수해 최순실씨와 통화한 내용 등 결정적 증거를 확보했다. 삼성과 관련해서도 미르·케이스포츠재단에 건넨 돈이 뇌물이라고 볼 간접 정황들을 상당수 확보해, ‘특검법’이 통과되자 관련 자료를 특검에 넘긴 바 있다.
이 사건 ‘주범’인 박 전 대통령 구속기소 역시 검찰의 성과다. 이 수사를 잘 아는 검찰 관계자는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바뀌면서 검찰의 수사 의지도 달라졌고, 결국 박 전 대통령 구속으로 이어졌다”면서 “우 전 수석이 구속을 면한 것도 똑같은 잣대에서 바라보면 된다. 결국 수사 성패는 검찰의 수사 의지에 달린 것”이라고 밝혔다.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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