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안전기술공단 소속 최범준 운항관리자가 13일 제주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운항을 앞둔 골드스텔라호(1만5000t급) 화물칸에서 고박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제주/고한솔 기자
지난 14일 아침 7시10분, 제주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전남 완도로 가는 한 카페리 선박의 화물칸에 선박안전기술공단의 운항관리자 최범준씨가 올랐다. 최씨는 화물차와 화물차 사이 1m가 채 안 되는 미로처럼 좁은 공간을 이동하며 차량의 고박 상태를 점검했다. 선박에 연결된 체인이 화물차의 6~8곳, 승용차의 4곳에 각각 고정돼 차량이 움직이지 않도록 잡아주고 있는지 체크했다. 최씨는 체인을 타 넘으며 빠르게 이동했고, 손전등 불빛도 최씨를 따라 체인 위를 바쁘게 옮겨 다녔다. 그러다 손전등의 불빛이 한 4.5t 트럭 앞에 멈췄다. 최씨가 체인 위에 발을 올리고 힘을 주자 맥없이 묶인 체인이 덜렁하고 움직였다. 최씨가 옆에 선 항해사에게 말했다. “3○○○(차 번호) 수정해주세요.” 최씨의 지적에 느슨했던 체인이 다시 팽팽해졌다. 6327t인 이 배는 세월호(6825t)와 비슷한 규모다. 승객과 차량, 화물을 싣는 카페리인 점도 같다.
제주항 운항관리자 분주한 점검 고박 체인 팽팽한지 샅샅이 체크 “절차 무시했다간 감옥 갑니다” 세월호 참사는 ‘거짓 숫자’서 비롯 승객수 등 챙겨 복원성 계산 거듭
운항관리자, 해운사 아닌 공단 소속 형사처벌 규정 두고 독립성·책임 강화 화물도 계량증명서 의무화했지만승선 전 몰래 적재탓 제도 정비 필요
■ 보고서에 이름만 올렸던 3년 전…이제는 직접 현장에 3년 전, 출항을 앞둔 세월호에 대한 점검은 한국해운조합(해운조합) 인천지부 운항관리자 전아무개씨 몫이었다. 그는 배에 타지 않았다. 흘수선(선체가 바다에 얼마나 잠겼는지 표시한 선)만 확인해 화물 과적 여부를 확인했다. 세월호 항해사가 작성해 온 점검보고서는 눈으로만 훑었다. 화물 적재, 선박 흘수 등 5개 항목 모두 ‘양호’로 체크했고 일반화물, 자동차, 컨테이너, 여객 등 숫자를 채워야 할 칸은 아예 빈칸으로 남겼다.
세월호 참사로 운항관리자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졌다. 과거에 운항관리자는 해운조합에 소속됐다. 선사의 이익단체인 해운조합에서는 애당초 독립적인 관리·감독이 불가능했다. 2015년 7월 정부는 선박안전기술공단에 연안여객선 안전 운항 관리 업무를 맡겼다. 운항관리자는 출항 전 선장 등과 현장에 직접 나가 합동점검을 한다. 결함이 발견되면 심한 경우 출항을 정지시킬 수도 있다. 바뀐 제도로 운항관리자는 선사 쪽과 ‘불편한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최범준씨는 “안전점검을 하다 보면 선사 쪽과 마찰이 생길 때도 있지만, 운항관리자들이 선사와 독립돼 있기 때문에 출항 정지시켜도 우리로선 아쉬울 게 없다”고 말했다. 최씨는 선원과 함께 조타실부터 여객실, 갑판, 기관실을 차례로 훑었다. 레이더나 기적 등 항해 장비는 제대로 작동하는지, 여객실에 구명조끼는 제대로 비치돼 있는지를 눈으로 확인했다. 그중에서도 최씨는 화물칸에 가장 오랜 시간을 투자했다. 참사 당시 청해진해운은 화물을 더 많이 싣기 위해 고박을 부실하게 했다. “고박 규정을 다 지키면 (화물) 적재 공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규정대로 고박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청해진해운 물류팀장 남아무개씨의 검찰 진술이다. 최씨는 선박을 묶은 체인이 허술하진 않은지, 바퀴를 지탱하는 버팀목이 갖춰져 있는지 일일이 확인했다. “차량 데크에 오면 더 집중하게 돼요. 세월호 참사도 그랬고 중량물이다 보니, 잘못하면 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제일 높아요. 일일이 이렇게 다 눈으로 확인해야 발 뻗고 잠이 와요.”
선박안전기술공단 인천운항관리센터 소속 운항관리자가 11일 오전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서 운항을 앞둔 선박들의 안전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인천/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흘수선까지 확인한 최씨는 다시 조타실로 돌아왔다. 선사가 화물량, 승객 수 등 숫자를 대입해 복원성(배가 기울었다가 원래의 평형 상태로 되돌아오는 성질)을 계산한 ‘복원성계산서’가 마련돼 있었다. 그는 숫자가 잘못 기재돼 있지 않은지 한번 더 들여다봤다. 출항 10분을 남기고, 모든 점검을 마친 최씨가 점검보고서에 이름을 적고 서명했다. 점검보고서에 오른 23가지 항목에 모두 ‘문제없음’이라고 표시했다. “배는 카고(화물)가 사람인 셈이잖아요. 보고서에 서명했다는 것 자체가 안전점검에 나도 책임이 있다는 거죠. 꼼꼼히 할 수밖에 없어요.”
운항관리자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이 부활한 것도 경각심을 일깨우는 요소가 됐다고 운항관리자들은 입을 모았다. 2012년 해운법을 개정하면서 운항관리자의 의무 위반 조항이 삭제된 바 있다. 2015년 법을 바꾸면서 운항관리자 의무 위반에 대한 벌칙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강화됐다. 운항관리자 전아무개씨는 대법원 심리까지 거친 끝에 업무상 과실치사,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인천에서 일하는 한 운항관리자는 “절차대로 안 하면 우리가 빵(감옥)에 간다고 말한다. 그렇게 이야기하면 선사 쪽도 설득된다”고 했다.
박두용 한성대 교수(한국안전학회 부회장)는 “안전이 규제로 받아들여지다 보니, 과거 ‘규제 완화’의 흐름을 타고 안전 점검 업무가 이해당사자인 해운조합으로 넘어가게 됐다”며 “안전은 어려워서 못하는 게 아니다. ‘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다. 기발한 방법 같은 게 있는 게 아니다. 그저 기본원칙을 지키는 것이 안전을 지키는 일이다. 그 기본들이 지켜지지 않아 3년 전 참사가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 전산화된 화물 계량…추가 적재 우려도 13일 오후 제주도에 있는 한 주유소 겸 계량증명소. 전남 여수와 제주를 오가는 1만5000t급 선박의 출항 시각이 다가오자 계량증명소도 분주해졌다. 오후
3시께 이삿짐 트럭이 공인계량소로 들어와 세로 8미터, 가로 4미터 크기의 중량계측기 위로 천천히 올라섰다. “조금 더 앞으로 나오세요. 스톱!” 사무실에 자리 잡은 계량소 직원의 안내에 따라 화물차가 계측기 위에 제대로 자리를 잡은 지 몇 초 지나지 않아 ‘1만4980㎏’ 트럭의 총중량이 계량증명소에 설치된 컴퓨터 시스템에 표시됐다.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요금을 주고받듯 계량소 직원이 출력한 계량증명서를 화물기사에게 건넸고 계근비 6000원을 받았다. 계량증명서에는 차량번호와 계측 시간, 화물 중량이 인쇄됐다. 이 모든 과정에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계량증명소 관계자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전산화돼 있기 때문에 화물 수치를 조작할 수 없어요. 세월호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계근하는 일도 없었을 텐데, 정확하게 해야 하지 않겠어요?”라고 말했다.
3년 전 세월호는 한국선급이 승인한 최대 화물 적재량(1077t)을 두배가량 초과한 2215t을 실었다. 그러나 이 수치도 정확하진 않다. 청해진해운이 부피, 무게 등 제각기 다른 기준으로 화물의 운임을 계산했기 때문이다. 세월호는 화물을 더 많이 싣기 위해 평형수까지 줄여가며 화물을 실었다. 세월호 참사 뒤 화물 및 화물차량은 계량증명소의 중량계측기에서 무게를 측정한 뒤 발급받은 계량증명서를 제출해야 선박에 승선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여객선의 정확한 화물 중량을 계측하는 게 여전히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계량증명소에 들러 계근을 마친 화물차들이 부두로 들어가기 전 화물을 추가로 적재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부두에 계근장비를 설치해 승선 직전 화물 중량을 계측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임남균 목포해양대 교수는 “참사 후 3년이 지난 지금도 일부 화물은 몇 톤인지 사실상 정확히 알기 어렵다. 계량하는 업체로부터 서류를 받아서 총중량이 몇이라고 증명을 하는데 그 증명서가 정확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정확하게 하려면 배에 올라가기 직전에 부두에서 화물 중량을 계측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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