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조천읍에 있는 세월호 참사 추모공간 ‘기억공간 리본(re:born)’
“기억할 준비가 되셨나요? Are you ready to remember?” 지난 14일 제주시 조천읍에 자리한 빨간 지붕을 얹은 건물.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이와 같은 문구가 방문객의 발걸음을 멈칫하게 한다. 이곳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억공간 리본(re:born)’. 이 문구를 지나 문을 열고 들어서면 20평 남짓한 공간에 바다 위를 헤엄치는 304마리의 고래 인형을 만날 수 있다. 세월호 참사 3주기를 맞은 4월, 세월호가 향했던 목적지 ‘제주’에서 되살아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이다. 중앙에 노란색 종이배가 빛을 내는 가운데, 벽에는 쪽빛 천이 파도를 형상화한 듯 걸려 있고 저마다 다른 크기의 연두빛, 푸른빛 고래들이 천장에, 또 벽에 매달려 어디론가 자유롭게 유영하고 있다.
제주시 조천읍에 있는 세월호 참사 추모공간 ‘기억공간 리본(re:born)’
제주시 조천읍에 있는 세월호 참사 추모공간 ‘기억공간 리본(re:born)’
고래 한 마리 한 마리를 눈으로 더듬으며 걸음을 옮기다 보면 방문객들은 어느새 거울을 맞닥뜨리게 된다. “나는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입니다.” 거울에 적힌 문구가 ‘기억하는 사람’으로서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제주시 조천읍에 있는 세월호 참사 추모공간 ‘기억공간 리본(re:born)’
‘기억공간 리본(re:born)’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기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전시와 공연 등의 활동을 통해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것이 이 공간의 목적이다. 단원고 아이들의 텅 비어버린 방을 촬영한 사진들을 모아 2015년 첫 번째 사진전을 열었다. ‘고래의꿈304’라는 이름으로 열린 이번 전시는 5번째 전시다. 이번 전시에 쓰인 고래 인형은 제주학생문화원 평생교육 감천염색 동아리 ‘감쪽애’ 회원 13명과 중·고등학생들이 세월호 희생자를 기억하며 만들었다. 전시회가 끝나면 세월호 유가족에게 보낼 예정이다.
‘공간지기’ 황용운(37)씨는 2015년 4월16일 기억공간을 만들었다. 황씨는 2014년 참사 직후 광화문에서 열린 집회에 참여했다가 경찰에 연행된 경험이 있다. 이틀 동안 경찰서에 머무르면서 분노했던 기억이 뚜렷하다. 이후 ‘잊지 않겠다, 기억하겠다’ 했지만 어떻게 잊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 ‘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공간을 만들자’고 다짐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기억공간을 만들기 위해 제주도로 내려왔다. 공간을 사고 꾸미는 데 퇴직금을 쏟아부었다. “제주도는 세월호의 도착지였잖아요. 세월호라는 배를 타고 도착할 제주도가 누군가에겐 신혼여행지였을 수도 있고, 새로운 삶의 터전이었을 수도 있고…. 단원고 학생들에게는 수학여행을 추억하는 공간이었겠죠. 제주도에 닿지 못해 이루지 못했던 저마다의 꿈을 제주도에서 기억해야겠다 생각했어요.” 황씨가 제주도에 기억 공간을 만든 이유다.
기억공간에는 하루 평균 10여명의 사람들이 방문한다. 세월호 참사 3주기를 맞은 최근 방문자 수가 늘었다. 전시회 관람 비용은 무료다. 시민들의 후원을 받아 공간 운영 비용을 댄다. 지역 주민들이 ‘기억지기’라는 이름으로 공간지킴이 자원 활동을 하면서 힘을 보태고 있다.
14일 제주도 ‘기억공간 리본(re:born)’을 찾은 방문객들에게 ‘고래의꿈304’ 전시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는 황용운씨(왼편)
황씨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책임자 처벌’이 이뤄질 때까지 기한 없이 공간을 운영할 생각이다. “‘리본’은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사회적 기억으로 다시 태어나다’의 의미도 담고 있어요. 공간을 통해 기억하는 사람으로서 나 자신을 돌아보면 좋겠어요. 세월호 참사도 어떻게 보면 자신과 직접 연관이 없는 일이에요. 일부러 기억을 안 하면 말만 남는 거죠. 그 정도를 넘는 용기가 필요해요. 그런 의미에서 ‘잊지 않겠다’는 수동적이고 감정적인 표현보다 ‘기억하겠다’는 능동적인 행동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글·사진 제주/고한솔 기자
so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