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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시도 때도 없이 엮으시렵니까? 걱정 붙들어 두세요

등록 2017-04-30 09:35수정 2017-04-30 09:47

“아직 혼자세요? 이 친구 어때요?”
회식자리, 선배는 날 ‘시장'에 내놨다
괜찮다며 ‘거절'한 상대방과 나는
“그리 눈이 높아선…” 뭇매를 맞았다

“키스는? 결혼은?…너 비혼이야?”
끝없이 자신의 ‘정답’을 강요한다
‘널 위해 하는 말'이 상처일 수 있음을
싱글에게도 예의를 보여주시길
내 연애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정말 내 인생을 걱정해서 하는 말은 아닐 거다. 싱글이라는 이유로 이 사람 저 사람에 가져다 붙여가며 술자리 안줏거리 삼아 타인의 삶을 난도질한다는 건 예의와 배려, 존중의 문제다. 게티이미지뱅크
내 연애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정말 내 인생을 걱정해서 하는 말은 아닐 거다. 싱글이라는 이유로 이 사람 저 사람에 가져다 붙여가며 술자리 안줏거리 삼아 타인의 삶을 난도질한다는 건 예의와 배려, 존중의 문제다. 게티이미지뱅크
[토요판] 이런, 홀로!?

‘서로 잘해봐~’라는 폭력

“어머 아직 혼자시구나. 여기 제 후배 어때요? 얘도 만나는 사람 없는데. 둘이 잘해봐요. 호호호.”

저기 ‘얘'가 접니다. 업무차 다른 회사 분들과 잡힌 저녁 자리. 선배가 “여기 이 친구가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만나는 사람도 없다네요”라며 허허 웃는 다른 회사 부장의 말에 “여기 얘도 싱글인데 둘이 잘해보라”며 호호 웃으며 절 들이밀고 있네요.

업무 얘기는 뒷전으로 밀리고 “요즘 친구들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안 낳아 출산율이 심각한 문제”라는 나라 걱정이 시작됐습니다. 어느덧 전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는 ‘요즘 친구들'이 되어 오늘 처음 만난 저 건너편에 앉아 있는 사람이 ‘남자로서' 어떤지 대답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건 저 건너편에 앉아 있는 저분도 마찬가지겠죠. 우리는 그냥 상사가 부른 술자리에 불려나와 숨만 쉬고 있었을 뿐인데….

‘싱글=서로 잘해봐야 할 존재’?

전 서른다섯 살입니다. 아직 결혼은 안 했죠. 네 맞습니다. 저는 서른다섯 결혼하지 않았고 연애도 하고 있지 않은 말 그대로 ‘홀로’인 여자 사람입니다. 언제부터였을까요.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연애도 하지 않는 이들은 조직의 무능력자가 되어 주변 모두가 나서 구제해줘야 할 대상이 된 것이.

양쪽 ‘싱글'들의 만남을 성사시키기 위한 대화는 쉽게 끝날 것 같지가 않습니다. 저쪽에서는 이 남자가 얼마나 성실하며, 모아둔 돈은 얼마나 있을 것임이 분명하며, 얼마나 온화하신 부모님 밑에서 자랐는지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질세라 우리 쪽 선배 역시 제가 얼마나 ‘센스' 있으며 주변에 상냥하고 조카들을 잘 보는지를 얘기하고 있네요. 중요한 건 저나 저 사람이나 서로 ‘다들 안 그러셨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언제부터였을까요. 술을 먹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그 자리에 ‘홀로'인 남녀가 있으면 ‘서로 잘해봐야 할' 존재가 된 것이. 그냥 막 가져다 붙입니다. 저나 ‘저와 잘해볼 사람'으로 지목된 이의 의사 따위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홀로'라는 게 중요할 뿐. 이 자리에서 섣부르게 ‘(지금 만나는 사람 없지만) 괜찮다'거나 ‘지금 누굴 만날 생각이 없다'는 따위의 대답은 위험합니다. 다년간의 경험으로 지금 이 자리에서 웃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는 나름의 정답을 찾아냈습니다. 물론 제 속은 타들어갈지라도요. 그런데 저분이 금기된 그 말 “하하 전 괜찮습니다”를 말하고 말았습니다. “눈이 높으시네. 그렇게 눈이 높으면 좋은 사람 못 만나요. 눈높이를 좀 낮춰보세요. 그럼 금방 좋은 사람 만날 텐데. 얘 진짜 괜찮은 애예요.”

건너편에 앉아 안주를 입에 밀어 넣고 있던 전 방금 처음 본 사람의 눈높이에 맞지 않아 차인 여자가 됐습니다. 그리고 “괜찮다”며 웃어넘기려던 분은 주제에 맞지 않게 눈이 높아 눈높이를 낮춰야 하는 남자가 됐습니다. 숨만 쉬며 앉아 있던 우리는 숨만 쉬다가 뺨 맞은 기분으로 입을 다물고 안주를 집어 들고 술잔을 기울일 뿐. 아 갑자기 단게 당기네요. ‘단거'라고는 없는 술자리, 대신 맥주를 들이켜며 맥주 속 탄수화물이 어서 당으로 분해가 되길 기다려봅니다.

“그럼 주변에 괜찮은 사람 없어요? 얘 소개팅이라도 해줘요~. 주변에 친구들 소개해주면 되겠네.” “아 그럼 소개팅을 알아볼까요. 어떤 사람이 좋으세요?”

처음 보는 사람에게 소개팅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된 저는 흔들리는 동공을 부여잡으며 “저 소개팅 괜찮아요. 마음만 받을게요. 하하”라며 웃어보지만 역시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노력을 해야 사람을 만나지. 그렇게 있으면 안 된다니까. 게으르면 사람 못 만나. 어서 어떤 사람이 좋은지 말씀드려봐.”

방금 전 매일매일 소개팅을 해서 남자를 만나야 할 처지에 주제넘게 소개팅을 해준다고 해도 안 하는 나태한 여자가 됐습니다. 요즘 위가 안 좋아진 건지 간이 안 좋아진 건지 맥주 속 탄수화물이 아직도 당으로 분해가 안 되네요. 전국의 의사 여러분, 맥주를 당으로 분해하지 못하는 것은 소화기관의 문제인가요 간의 문제인가요. 어느 병원을 찾아가봐야 할까요.

사실 이건 처음 있는 별다른 일도 아닙니다. 얼마 전에는 지인들과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해외에서 살고 있는 지인이 오랜만에 한국을 찾아 반가운 마음에 나갔던 술자리였죠. “요즘 만나는 사람 없어? 결혼은 안 해도 연애는 해야 되는 거야. 연애는 끊임없이 해야지. 너 지금 문제 있는 거다. 너 진짜 외모도 괜찮고 성격도 좋은데 왜 만나는 사람이 없지? 그럼 너 눈이 높은 거 아니야? 야, 남자 다 똑같아. 그냥 아무나 만나.”

내 성생활에 관심 끊어 달라!

한두 번 들어본 레퍼토리도 아닌데 의연하게 웃으며 “그러게 이렇게 괜찮은데 왜 만나는 사람이 없지? 근데 만나는 사람 없으면 나 뭐 잘못하고 있는 거야? 왜?”라고 스스로도 대견할 만큼 능숙하게 받아넘기는 찰나. 이쯤에서 끝나면 좋았을 텐데 한걸음 더 나가네요. “마지막으로 남자랑 손잡아 본 게 언제냐. 키스는 언제 마지막으로 해봤어?”

숨만 쉬고 앉아 있다가 문제 있는 사람이 돼 어리둥절하던 차에 마지막 질문을 받고는 결국 입을 열고 말았습니다. 남이야 연애를 하든지 말든지요. 지금 제가 제 성생활까지 여기서 보고를 해야 하나요. ‘내 연애와 성생활에 관심을 끊어 달라' 읍소하니 “되게 예민하다. 너 괜찮다는 얘기 하는 건데. 예전보다 가시가 돋친 거 같아”라는 말이 돌아왔습니다. 숨만 쉬고 앉아 있다가 문제 있는 사람이 된데다 성생활 지적까지 받아 문제를 제기하자 ‘예민'하고 ‘가시 돋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대화를 들은 누군가는 마음속으로 ‘이런 게 노처녀 히스테리. 역시 연애를 해야 돼'라고 생각했을까요.

요즘엔 ‘비혼'이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결혼 꼭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꽤 많습니다. ‘비혼'을 이해한다는 말이 곧 자신의 ‘열린 사고'를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랬더니 이제는 ‘결혼'과 ‘비혼' 중에 선택을 하랍니다. “결혼 생각이 있기는 한 거야? 비혼주의면 모르겠는데 결혼을 할 거면 빨리 해야지. 아이도 낳고 하려면 나이 들면 힘들어. 그래서 넌 비혼주의인 거야?”

사실 전 결혼을 꼭 해야겠다거나, 결혼을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거나 어느 쪽을 정해놓고 살고 있지 않습니다. 결혼하고 싶은 사람을 만난다면 결혼을 할 수도 있겠죠. 결혼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는데 굳이 결혼을 하겠다고 바둥대고 싶지도 않습니다. 또 결혼을 했다고 꼭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너무 늦게 결혼해 아이를 갖는 데 문제가 있는데 아이를 갖고 싶어진다면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으면 된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결혼 문제에 있어서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정답이나 방향을 정해놓고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물론 이게 문제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제 선택이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책임져줄 수 없는 자신의 정답을 제게 강요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게 제 생각이죠. 제 인생은 제가 사는 거니까요. 아! 피해를 준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네요. ‘출산율 저하에 따른 국가 경쟁력'을 얘기하며 ‘네가 국익을 해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으신가요. 이미 누군가 낳아놨지만 제대로 키울 수 없어 방치되고 있는 아이들이 잘 자라도록 돕는 건 어떤가요.

술자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결혼과 연애를 하지 못하면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화가 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아마도 그들의 말 속에 결혼도 연애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만으로 뭔가 문제 있고, 부족하고, 실패한 인생이라는 평가가 숨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널 위해 하는 말'이라는 이면에는 결혼을 하고 연애를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꽤 성공적으로 살고 있다'고 안심하고,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제 인생은 제 삶의 방향과 가치관과는 상관없이 결혼하지 않고 연애를 하고 있지 않다는 것만으로도 ‘실패한 삶'이라는 의미가 숨어 있지는 않을까요. 사실 제 연애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정말 제 인생을 걱정해서 하는 말은 아닐 겁니다. 싱글이라는 이유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가져다 붙여 가며 술자리 안줏거리 삼아 타인의 삶을 난도질한다는 건 사실 예의와 배려, 존중의 문제일 겁니다. 누군가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고 말했다지만 ‘싱글'에게는 예의 따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누가 그랬던가요.

전 정말 괜찮답니다. 하루하루 행복하게 즐겁게 살아가고 있답니다. 당신이 제 연애사에 걱정만 안 해준다면요. 소개팅 필요하면 연락드릴게요. 서로 더 즐거운 다른 얘기를 나눠요, 우리.

이런, 홀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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